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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pr 28. 2019

하얀성

오르한 파묵

밸런타인데이 때 와이프 기다리며 알라딘에서 산 노벨상 수상작가 책 두권 중 한 권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재미가 없어서 중간에 책을 덮고 싶었다. 책 분량이 길었다면 안 읽었을 거 같다. 책을 작가만 보고 덜컥 사는 것도 실패할 경우가 종종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파룩이라는 사람이 1982년에 폐허 같은 문서 보관서에서 [포목상의 의붓아들]이라는 필사본을 발견하고 이를 책으로 출판한다는 걸로 시작한다. 이런 시작은 김영하가 말했듯이 역사와 소설 사이를 모호하게 해서 독자에게 책을 더 현실성 있게 받아들이게 한다.


이탈리아 지식인이 배 타고 가다가 터키 함대에 붙잡혀 노예가 되었는데 거기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호자라는 이슬람 지식인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호자는 학문과 지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으로 그의 모든 지식을 흡수하려고 한다. 그렇게 같이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어느 날 호자는 이런 질문을 한다.  “왜 나는 나일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으며 호자에게는 이 일을 할 용기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를 고통에 빠지게 만든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그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막막하다. 출발은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적어본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사악한 점을 적어본다.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악한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 쓰는 족족 찢어버린다.


그는 호자에게 자신의 부정적이고 사악한 면을 쓰게 함으로써 자신이 그의 노예가 아니라 그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얼굴뿐만이 아닌 정신까지 하나가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그가 호자인지 호자가 그인지 헷갈린다.


이슬람 군주인 파디샤를 위한 무기를 연구하던 중 폴란드 원정에 따라가게 된다. 그곳에 하얀성이 있다. 너무 아름다워 꿈에서 만 볼 수 있을 거 같은, 하지만 그 성에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 무기가 늪에 빠져 무용지물이 되자 이교도인 그는 병사들에 의해 불길하고 부정한 인물로 지목되어 위험에 빠진다. 호자는 그와 자기의 옷을 바꿔 입고 도망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운명과 삶이 바뀐다. 그가 호자가 되고 호자가 그가 된다.


이 소설은 이탈리아와 터키 사람이 만나, 아니 이슬람과 기독교가 만나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던 두 자아가 성장하면서 서로 위치가 바뀌는 과정을 그린 거 같다. 내 안의 두 자아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다. 하지만 둘이 같이 배우고 싸우고 깨지면서 닮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둘의 역할이 바뀐다.


왜 내가 나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깊이 있게 고민 해 본 적도 없는 거 같다.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인거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결론이 안 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외면하고 도망칠 순 없다. 그러니 자신이 이중적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볼까.  


장난 같지만 소설 속에 이런 가사 후렴구가 나온다.


나는 나다.  나는 나다.



p18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p86

“왜 나는 나일까?” 나는 호자에게 왜 그가 그인지 모른다고 말한 후, 그 문제는, 그곳에서, 내가 살던 나라 사람들이 많이 질문하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질문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p88

이기적인 아이들이 권태에 빠지면 생산적이거나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는 그 후렴구가 들리는 원인이 아니라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p93

내 몸이 내게서 빠져나가, 어둠 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나와 닮은 사람과 결탁하여 둘이서 함께 내게 대항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p98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듯,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본질을 볼 수 있다고


p137

“예언은 우스꽝스러운 짓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237

이상한 것을 우리 자신 안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들도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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