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Apr 13. 2019

말하다. talk. 言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중 두 번째. 주로 강연 때 했던 얘기나 질문, 답변을 모아놓은 글이다. 그러다 보니 중복되는 내용도 있고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김영하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는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남을 바꾸기도 어려우니 자신을 바꿔라 라고 한다. 김영하는 자신을 바꾸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대신 ‘관점은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관점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인식만 하는 건 의미가 없나?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지만 시도하는 게 인간이다. 역사가 발전하는 것을 보면 한 개인이 만드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이 시도한 것들이 쌓이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한 현상에 대해서 누구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누구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우주에서 하나의 먼지에 불과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누구는 허무주의가 되겠지만 누구는 먼지도 안 되는 인간이 이 광대한 우주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결국엔 관점의 차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김영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자>이고 <건강한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근본적으로는 <허무주의> 자다. 세계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를 견디게 하는 게 소설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많이 알수록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한 가지 보루가 필요하다. 내 정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 그렇게 생각해보니 난 낙관적 현실주의자이고 싶다. 삶의 의미는 없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인간이고, 내가 성장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그렇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다. 설사 성장하지 못하면 어떠한가? 조금의 변화는 있지 않았을까? 그걸로 충분하면 안 되나?


글을 쓴다는 건 억압된 것으로부터의 자기 해방이라고 한다. 김영하는 금지된 것을 써야 한다고 한다. 책상 서랍에서 꺼내기 싫은, 부모에게는 보여주면 안 될 거 같은 글을 쓰라고 한다. 가면을 벗어버리라는 얘기일 거다. 하지만 먼저 내 욕망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 욕망이 있어서 문제라기보다는 없어서 문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인식하기 위해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다.

내가 말을 하는 이유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가 시도하는 이유는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삶의 완성은 없다. 변화만 있지 않은가?


p21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세계명작들을 보라. 성공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p57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


p115

넓게 보면 사랑조차도 낭만적으로 포장된 부드러운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감정이 나라는 주체를 초과해 타인에게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충돌들이 생기겠죠.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부모가 섹스를 하면 어린아이가 문을 열고 “엄마 아빠 왜 싸워"라고 묻는다잖아요? 섹스가 폭력을 닮았다는 것, 저에게는 언제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p121

지금 스물두 살인데 빨라도 마흔 살이나 돼야 감옥을 나갈 수 있다는 자기 운명을 생각하고 쓴 거죠. 그 순간만큼은 자기 인생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직면해서 쓴 것이거든요. 이런 글들은 힘이 있고, 진실해요. 그래서 저는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작가의 이전글 인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