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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an 26. 2022

글발로 얻은 영주권

나의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곳

(이전 글에서)'작가로 살아왔더니 영주권이 쥐어졌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 '열심히 벌었더니 부귀가 뒤따랐다', '계속 도전했더니 기회가 주어졌다'와 같이 그저 하나의 조건과 결과로 이뤄진 문장이다. 


불과 일 년 전 한국에서 이민 가방을 싸기 시작한 때부터 이곳 캐나다에 정착한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영주권을 받았느냐'는 것이었다. 많은 이민자들의 삶이 그러하듯, 일시적인 비자로 해당 국가에 몇 년을 살다가 비로소 그간의 삶을 보상이라도 받듯 영주 자격을 얻는 게 가장 흔한 시나리오이지 않나. 그런데 캐나다에 오기도 전에 한국에서 미리 영주권을 받고 왔다고 하니, 같은 이민자자들 사이에서도 낯설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그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에게 주는 영주권이 있거든요."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기 부끄럽지만, 모든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단어로써 이해를 구한다. 캐나다는 이민국가라는 타이틀에 맞게 다양한 이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예술·문화·스포츠 종사자들에게 적용되는 것도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Self-employed Persons Program이다. 한국인들은 이를 '자영이민'이라 줄여 말한다. (일반 자영업자가 아닌 예체능계 사업가/프리랜서에게만 해당한다.)     


자영이민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9년 1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 전. 어느 캐나다 이민자가 쓴, (한국에서의)미술 경력으로 캐나다 영주권을 받아 이민을 오게 됐다는 글을 통해서였다. 미국이나 독일, 뉴질랜드 등에서 예술인에게 비자를 내어준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영주권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생소하고 신선한 내용이었다. 자격 조건을 읽어보니 왠지 나도 해당이 될 것 같아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본 후 지원하기로 결심을 내렸다. 


첫 출간 때가 떠올랐다. 작가는 아무나 되니? 출간이 쉬운 줄 알아? 부정적인 목소리를 걷어내고 A부터 Z까지 방법을 찾아내 그대로 따라 했었다. 집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을 뿐, (원고)투고-(출판사)계약-출간까지는 2개월이면 충분했다.  


이민은 아무나 가니? 영주권 따는 게 쉬운 줄 알아? 

첫 출간의 경험은 큰 힘이 됐다. 서류 발송부터 최종 승인까지 1년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수속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20년 초, 예기치 못한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이민국 업무가 잠시 중단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빨리 진행된 편에 속한다. 그 뒤로도 직장 생활을 좀 더 하다가 지난 2021년 봄 캐나다에 정착했다. 


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매일 글만 쓰더니 결국 그 글발이 먹혔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세계적 성과를 올린 적도 없는데, 그들은 나의 어떤 부분에서 확신을 얻었을까. 


자영이민의 자격 조건 중 '믿음의 영역'으로 평가될 수 있는 항목이 하나 있다. 캐나다 문화 산업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무리 날고 기는 명성 높은 예술인이라 하더라도 정작 캐나다에 와서 그 재능을 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캐나다에 온 후로도 문화 활동을 이어갈 것임을 밝히며 이민 심사관을 납득시켜야 한다. 미술, 음악, 스포츠는 비언어적 예술 영역이지만, 문학은 말 그대로 언어적 영역의 전형이다. 그래서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많은 서류들 중 가장 큰 공을 들인 것은 한 장 짜리 커버레터였다. 작가이니 글로 승부해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기술·취업·투자 이민 등 이민의 종류도 참 다양하지만, 특히나 예술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캐나다의 이민 정책은 어떤 면에서는(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재능과 가능성만을 심사한다는 점에서) 특혜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마운 부분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작가협회의 회원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출간 기록이 있어야만 멤버십 가입이 가능한데, 가입 전 문의를 해 보니 '모든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독려하기 위해 해외(캐나다 외)에서 출간한 기록도 인정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에서만 출간을 해 온 나는, 그렇게 캐나다 작가들의 공동체 속에 포함되었다.  


단순히 영주권을 준다는 이유에서 캐나다 이민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비록 십여 년 전이긴 하지만 캐나다 워홀 경험이 있었기에 이곳 문화에 익숙했고, 조금은 갇혀 있던 (글의)소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감을 찾고 싶었다. 다양성과 가능성. 그런 캐나다여서 좋았다. 나의 재능에 무대를 빌려주고 가능성에 투자한, 그런 캐나다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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