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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an 29. 2022

통증 알림 설정

후유증의 좋은 기능

소리나 진동이 울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 대부분의 SNS 알림은 꺼 두는 편이다. 사실 휴대폰 자체를 음소거해 두는 날도 잦다. 취재 때 생긴 습관으로, 휴대폰이 녹음기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인터뷰 진행에 방해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또한 늦은 밤이나 새벽, 주말까지도 울려대는 알림에 일종의 노이로제(심리적 긴장감)가 심해진 탓도 있다. 


대신 수시로 폰을 열어본다. 부재중 알림이 있으면 그때 회신하면 된다. 처음엔 모든 알림을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응대하곤 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글을 쓰다가 리듬이 깨지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인터뷰 중에 울리면 나보다도 인터뷰이가 멈칫해했다. 좀 쉬어볼까 하는 늦은 밤이나 주말에 (일과 관련된)연락이 오면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부터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 알림 설정은 하나 둘 off로 바뀌었다.


물론 직업적 특성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일'해야지, '일하기 위해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참 바쁜 시기--원래도 그랬지만 더 심해진 때--가 있었다. 해외 출장까지 겹친 긴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눈을 뜨자 얼굴에 통증이 올라왔다. 뭔가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욱신거림과 얼얼함이 있었다. 피로가 덜 풀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가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이 반쯤만 떠진 채 퉁퉁 부어있었다. '눈병인가. 아니면 자다가 벽에 부딪혔나.' 한 2초쯤 멍하니 거울을 보다가 단순히 그런 정도가 아님을 직감했다. '병원...이 열었나.'      


토요일 아침이었으나 오전 진료를 보는 병원들이 많아 다행이었다. 


"대상포진이네요. 언제부터 이랬나요?"


의사는 단번에 증상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생각해보니 귀국 전부터 눈 옆에 서너 개의 뾰루지들이 올라와 있었다. 원래 여드름성 피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수롭게 여길 정도도 아니었다. 


"안면부라 좀 위험해요. 오늘 다른 과 진료도 같이 보시죠. 무슨 일 하세요? 치료받는 동안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은데... 혹시 휴가는 못 내세요?"


환자보다 질문이 더 많은 의사였다. 당시엔 어리둥절했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얼굴엔 눈, 귀, 뇌로 이어지는 신경들이 많아 자칫하면 안면마비나 시·청각 손실,  뇌수막염 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낳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병원을 찾은 날 이미 눈이 부은 상태로 갔기 때문에 의사의 머릿속엔 합병증 의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검사 결과, 바이러스가 눈 신경에 옮겨가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을 나서며 진단서를 챙겼다. 의사의 강력한 권유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그 심각성을 느꼈기에...


주말이었으나 (누군가처럼)개의치 않고 상급자와 인사팀에 바로 연락을 취했다.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소견서도 첨부하면서. 그렇게 병가 2주를 확인받고 나서 휴대전화의 모든 알람을 꺼버렸다. 


모처럼만의 긴 휴가였다. 회사로부터의 물리적 거리보다도 정신적 거리가 멀어지자 마음이 편해졌다. 쉬는 중에도 열이 잠깐 오르며 급성 편도염까지 이중으로 앓긴 했지만, 병원으로 출근하고 약을 입에 털어 넣어도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라도 쉬게 되어 어쩌면 좋았는지도...


그 후로 5년. 얼굴 우측 상반부를 강타했던 대상포진은 치료를 다 마친 후에도 지금까지 후유증을 남겼다.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쉴 때가 됐다'는 알림을 받는다. 공부한답시고 늦은 밤까지 책을 봐도 그 알림이 울려대니 그 김에 책을 덮기도 한다.


수많은 인터뷰이 중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스스로 졸음운전을 해 교통사고가 났는데, 11년째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던...  


"지금도 그 통증을 매일 느낍니다. 그런데 그 통증이 제게 리마인드 시켜줘요. '너는 덤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에 감사해라. 그런 큰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은 너는 행운아다.’ 아마 감쪽같이 나았다면 그날을 벌써 잊고 또 실수하거나 나태해졌을지 모르죠.”


후유증에 의한 통증은 기억을 동반한다. 통증은 미리 맞춰 놓은 알림처럼 메시지를 띄운다. 그 인터뷰이는 스스로 저지른 졸음운전의 순간이 떠올라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이고, 나는 '일하기 위해 살'았던 순간이 떠올라 일상의 밸런스를 찾고자 주위를 돌아볼 것이다. 후유증에는 사실 이런 좋은 기능도 있다.


종종 아픈 김에 쉰다고들 하지만, 사실 아프기 전에 쉬는 게 당연히 더 옳다. 휴대폰처럼 알림을 꺼버리고 싶지만, 이제 그건 내 의지대로는 할 수 없는 강제 설정이 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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