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걸다
이십 대에 호주와 캐나다를 1년씩 경험하면서 미련이 남는 일이 하나씩 있었다. 호주에서는 울루루(Uluru/ 내륙 중심부 사막에 위치한 거대 바위), 캐나다에서는 오로라를 보지 못한 채 한국으로 귀국했던 일이다. 그래서 두 나라를 떠나올 때 굳게 다짐했었다. 그것들을 보러 다시 오리라.
그러나 현실은 팍팍하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지만, 한국은 좁고 할 일은 많다. 직장에 묶이게 되면 좀처럼 긴 휴가를 내기가 어렵고, 단지 그것 하나 보자고 장거리 여행을 갈 생각하면 경비가 아까워 결심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호주를 떠나온 지 15년이 흐른 시점에 나는 울루루에 서게 됐다.
평소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울루루를 갔어야 했는데... 울루루 가봤어? 휴가 맞춰서 같이 갈래? 아, 울루루 직접 보고 싶은데..."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 가장 빈번한 야근과 극심한 스트레스가 닥쳤을 때 결심이 섰다. "울루루로 가자."
평소 주문처럼 되뇌었던 탓인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떠오른 목적지가 울루루였다. 직항이 없는 곳이지만 항공료를 더 아끼고 싶은 마음에 인천-홍콩-시드니-울루루로 이어지는, 결코 짧지 않은 비행길로 여행을 시작했다.
울루루의 사막은 너무 아름다웠다.
침낭을 깔고 누웠을 때 은하수 사이사이로 떨어지던 별똥별. 붉은 모래 때문인지 더 진하게 느껴지던 대지(흙)의 냄새.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야생 개(딩고)들의 울음소리. 타닥타닥 불타는 모닥불에 둘러앉아 시원하게 들이켰던 맥주 한 모금. 그 모든 순간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먼길을 날아가 볼 가치가 있었다.
일상은 너무 빨리 돌아왔다. 그러나 사무실 책상 파티션 한쪽 벽에는 그날 울루루에서 사 온 엽서 하나가 붙게 됐다. 나는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석양빛에 붉게 물들어가는 거대한 바위를 올려다봤다. 이제 울루루는 동경이 아니라 회상이 되었다.
"내친김에 캐나다 오로라도 보러 가야겠어. 토론토나 밴쿠버에선 보기 어렵더라구. 좀 더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다만 그 대범함이 너무 진화해서 단순히 여행을 뛰어넘어 오로라가 뜨는 도시로 이민을 와 버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이곳 캘거리는 옐로나이프(Yellowknife)만큼은 아니지만 캐나다의 대도시들 가운데 그나마 오로라가 가끔씩 뜨는 곳이기도 하다.
올 겨울 동안 벌써 세네 번의 오로라가 하늘을 덮고 지나갔다. 오로라 지수가 높을 때 알림을 받을 수 있는 앱이 있어서 갑자기 푸시 알림이 뜨는 날이면 그날은 잠을 설치기 일쑤다. (결국은 못 버티고 대부분 잠이 들었지만...) 언젠가 잠에서 깼을 때 창밖 하늘이 너무 밝아 아침인 줄 알고 시계를 다시 봤던 날도 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로라 앱을 켜보니 캘거리 도시 전체가 오로라에 덮여 있는 순간이었다.
역시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없다고 했던가.
가끔 신세한탄이라도 하는 날이면 등짝을 내줘야 한다. "자꾸 그런 말 하면 못 써.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려구."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인생은 없겠지만, 자꾸 되뇌는 말이 의식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을 다른 말로 '내적 독백'(interior monologue)이라 한다. 그러니 기왕이면 좋은 입버릇을 들일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