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전 익숙한 게 좋아요. (근데 어디에 떨어져도 적응은 잘해요) 전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에요. (근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어요) 전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워요. (근데 그룹 과제만 하면 제가 발표를 맡게 돼요) 전 겁이 많아서 주저할 때가 많아요. (근데 하지도 않았던 일을 후회하기보단 했던 일을 후회하고 싶어요)"
모두 내 안의 모습들이다. 나는 대체로 내향적인 듯하지만 갑자기 반대의 기질이 나타날 때도 있다. 원래 인간 내면에는 어느 정도의 이중성이 존재하고, 어느 성향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삶과 타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성격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에 그럭저럭 자신을 맞춰가며 살아간다. 어느 게 진짜 내 성격인지 스스로도 잘 모를 때, 그런 걸 알아보라고 성격유형검사(MBTI)가 생겨난 걸까. 요즘 MBTI 모르면 어린 친구들 대화에 끼기 어렵다고 해서 동료들과 카페에 둘러앉아 해봤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당시 INTJ(내향형/직관형/사고형/판단형)의 결과를 얻었었다. 친구에게 보여준다고 스크린 캡처를 해둔 게 있었는데 오랜만에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2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난 용의주도한 전략가(INTJ의 캐릭터)일까.
결과가 재밌었다. 지금은 ENFJ(외향형/직관형/감정형/판단형 -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는데 외·내향성이 반대되는 유형이었다. 원래도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치던 편은 아니었지만,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전략가에서 직관적이고 이상적인 실천가로 바뀌었다니, 그 갭이 크게 느껴진다.
환경이 바뀌면 성격도 변할까?
지난 2년 사이에 나는 큰 변화를 겪었다. (월급쟁이에서 프리랜서로)직업이 바뀌었고 (학·지·혈연에서 생면부지로)인맥이 바뀌었고 (빌딩숲에서 나무숲으로)풍경이 바뀌었고 (한국에서 캐나다로)나라가 바뀌었다.
돌이켜보니, 주로 해외에 나와 있을 때의 나는 한국에서보다 좀 더 대범하고 감성적이며 사교적이었다.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하려면 더 용기를 내야 했고 더 말을 걸어야 했다. 20대 싱글과 40대 가장의 책임감, 말단 직원과 그룹 회장의 리더십,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의 창의력이 다른 것처럼, 상황은 나를 변하게 했다.
나는 대체로 후천적 성격 형성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그래서 누군가 "이 일이 성격에 안 맞아요"라던가 "제 성격을 고쳐야 할 것 같아요"라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차라리 환경을 바꿔보"라고 조언한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던지 '그 환경 자체를 개선'해보라는 뜻이다. 평소 매우 얌전하고 소극적으로 보였던 친구가 노래방에만 가면 돌변하는 걸 보고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지 않아 자주 빠져나오곤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은 사실 가벼운 농담 같지만 진리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너무 오래 앉아 엉덩이가 배기면 폭신한 쿠션을 덧대어 앉고 그 마저도 안 먹히면 그만 일어나 다른 자리로 움직일 필요도 있다. 바꾸던지 떠나던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 앉을자리를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