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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Feb 04. 2022

전공 말고 교양

나의 관심사를 찾아서

현재의 직업(작가)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대학은 공대를 나왔다. 전전컴(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터 배우기 시작해 졸업 땐 컴퓨터 공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대학 동기들 대부분은 엔지니어이고 이제는 각자의 회사에서 잔뼈 굵은 베테랑들이 되어 나와의 (업무적)교집합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농담으로 "컴공이라 맨날 컴퓨터 다루잖아"라고 웃어넘기지만 요즘 컴퓨터를 안 거치는 직업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보고 있자면 돈 아깝게 대학은 왜 나왔나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는 분명 문과적 과목들보다는 딱딱 답이 떨어지는 수학, 과학이 좋았다. '이과니까 공대를 가야지. 갈수록 IT가 대세니 컴공으로 가야지.' 전공을 정할 때도 이런 단순한 계산이 있었던 걸까. 순진했던 그 계산이 틀린 답을 도출했단 걸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느즈막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대학 2학년 때쯤이다. 다른 핑계 댈 것 없이 '재미가 없었'다. 물론 즐거워 공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책상에 앉아 모니터만 바라봐야 하는 삶에 자신이 없었다. 그 당시에도, 미래에도...


종종 전과나 편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에겐 이 또한 어려운 과제였다. '다른 걸 공부한다면 뭘 하고 싶은데?'란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마지못해' 다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일단 졸업은 하고 보자, 더 배우다 보면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4년을 보냈다. 비싼 공대 학비를 대주신 부모님께는 매우 죄송하지만, '요즘 대학 안 나오면 어디 취직도 못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도 해야 했다.


"넌 어쩌다 작가가 됐냐. 참 신기해." 동기들이 물으면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나름의 당위성을 찾은 상태이다. 나는 전공이 아닌 교양을 살린 사람이니까.


대학을 졸업하려면 전공 외에도 일정 학점 이상의 교양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물론 그 비율이 전공과목보다야 작긴 하지만, 엄연히 학비에 포함된 과정들이다.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오래된 다이어리들을 정리하다가 대학 때 썼던 수첩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수첩 안에는 당시 과목 리스트가 적힌 주간 시간표가 부착돼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껏 내가 해 온 일들이 교양 과목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내친김에 대학 때 어떤 교양들을 들었나 다시 찾아보니 세계 여행, 북한 사회, 영화의 이해, 장애인과 공동체 문화, 한국 전통예술 등 주로 문화·예술 영역의 과목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거의 10년쯤 지난 후에 나의 첫 번째 책이 나왔는데 바로 여행 에세이였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은 공교롭게도 북한 인권을 다룬 책이었다. 신문사에서도 줄곧 북한 이슈를 다뤘고 칼럼으로 여행 및 영화 리뷰를 쓴 적이 많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정신건강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예술(그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캐나다 학생들에게 한국어(언어/문화)도 가르친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게 아니라, 실제로 모든 교양 과목들이 지나온 일들과 연결돼 있었다. 


'이제 보니 대학을 헛나온게 아니라 제대로 나와서 제대로 써먹고 있었네. 마지못해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구나.' 그때의 내가 귀엽고 기특해 보였다. 


대학에서 교양 과목은 그저 학점을 채우기 위한 것 정도의 가치로만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걸 십분 활용해 나의 관심사를 찾아가는 수단이나 기회로 본다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혹시 아는가. 거기서 직업을 찾게 될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나는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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