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편집을 맡았을 땐 한 달이 마치 일주일처럼 지나갔었다. 정확히는 기자 겸 편집자라서 취재(인터뷰 포함), 기사 작성, 편집, 인쇄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졌다. 심플하게 보면, 첫째 주에 편집기획, 둘째 주에 취재, 셋째 주에 기사 작성, 넷째 주에 마감...후 다시 첫째 주로 되돌아가는 루틴이다. 하지만 취재는 수시로 있었고 인터뷰는 마감 하루 전에 완료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타인의 글까지 교정, 윤문을 봐야 했기에 스케줄은 꽤 뒤죽박죽이 됐다. 그럼에도 그 혼돈을 헤쳐가며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감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감을 해서 인쇄가 넘어가고 나면 그날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인쇄본이 나오면 (수십 번을 봤어도 놓쳤던)오탈자가 눈에 들어와 마음이 개운치 않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다음 호 톱 기사는 뭐로 하지. 인터뷰가 언제였더라. 칼럼 주제는..." 정신은 이미 다음호에 가 있었다.
사이클(4주 단위)은 너무 빨리 돌아왔다. 그리고 남들보다 한 달씩 먼저 사는 느낌을 받았다. 가령 가정의 달을 맞아 예쁜 꽃과 선물상자를 고르기 바쁜 시기에 호국보훈의 달(6월)에 적합한 진지하고 경건한 기사거리를 찾아야 했고, 치열한 논쟁이 일고 있을 대선 직전엔 (경우의 수를 계산해)당선 가능성이 높은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정리, 분석하는 기사를 준비해야 했다. (신문 특성상 스트레이트 기사보다는 해설, 분석이 들어가는 칼럼형이나 인터뷰 기사를 주로 다뤘다)
첫 2년 정도를 그렇게 일하다 보니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신상에)더 큰일이 나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불안감마저 생겼다. 그래서 내부 회의를 거쳐 월간지를 격월간지로 바꾸게 됐다. 매달 마감이 두 달에 한 번으로 바뀌어 좀 더 수월해지려나 했지만, 사실 그런 까닭에 페이지수는 더 늘어났고 온라인 매체 활용을 확대하게 돼 업무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인쇄용 편집 마감이 한번 줄어든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부작용은 있었다. 격월간지가 되고 나니 이제는 남들보다 두 달을 앞서 살아야 했다. 설날 명절에 (3월호에 실을)3.1절 행사와 초봄의 주요 행사들을 미리 찾아봤고, 추석 명절엔 연말연시 기획기사를 준비해야 했다. 신문이 발행되는 시기에 맞춰 계획을 세우니 몸은 현실에 있어도 머리가 미래에 가 있었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앞날이 걱정돼 현실을 오롯이 즐기지 못한다는 단점과 그래도 남들보단 빠르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그것이다.
소화해내기 버거운 반복적 루틴이었지만, 그럼에도 오늘 난 그 안에서 삶의 힌트를 하나 얻는다. (경험을 바탕으로)마감의 주기가 짧으면 짧을수록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갔다. 그렇다고 그 주기가 너무 길어지면 나태해지거나 벼락치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서 기왕 계획(마감일)을 세워야 한다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간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고작 매일매일을 다루는 신문 따위보다 우리네 인생이 훨씬 멀고 장대하지 않은가. 작심삼일이 흔한 이유는 어쩌면 마감 주기가 너무 타이트해서인지도... 그래서 좀 더 긴 호흡으로 1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바라보는 편이 낫다. 각각의 마감 주기 때마다 나의 인생지가 발행된다고 가정하면 편집안 구성은 본인의 몫이다. 톱 기사(가장 큰 성취)엔 무엇을 실을지, 누구를 인터뷰(인맥 형성)할지, 특별기획(주요 변화와 이슈)의 주제는 뭐로 정할지... 그렇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틀을 짜는 일. 모든 편집자들이 이렇게 기획안 구성에 심혈을 기울이듯, 내 인생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편집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손사래를 쳤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잊힌다 했던가. 오늘로서 퇴사한 지 꼬박 일 년이 흘렀는데 추억이라도 곱씹듯 말하는 걸 보니 쉴 만큼 다 쉬었나 보다. 구정 연휴마저 지나 완전한 새해를 맞았으니, 이제 나를 위한 편집 기획안을 새롭게 짜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