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유사 이래 초유의 현상인 시베리아가 펄펄 끓고 있을 때 아무 연관성이 없음에도 괜스레 연관성이 있어 보이게 하는 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결과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포식한 느낌입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빅맥보다 훨씬 큰 러시아라는 거대 메뉴를 말입니다.
인간이 주도한 온실 효과로 시베리아에 폭염이 발생했다손 치더라도 우리 마음속의 시베리아는 여전히 냉기 가득한 서늘함과 끝 모를 아득함일 것입니다.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이 책은 저의 클라이언트께서 4년간 러시아에 근무하며 여행했던 이곳저곳의 이것저것에 대하여 쓴 에세이집입니다. 장르는 에세이지만 러시아의 모든 것을 담은 마스터 교본, 흡사 러시아 미니 백과사전으로까지 보여집니다.
제정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 소비에트에서 다시 러시아로 이어지는 광활한 땅의 역사에 대하여.. 시베리아의 자연자원만큼이나 풍부한 러시아의 시 소설 음악 미술 발레 등의 문학과 예술자원에 대하여.. 일상 속에 녹아있는 러시안의 종교 보드카 미녀 축제 백야 등의 생활자원에 대하여.. 그리고 각 자원의 주인공이 되는 러시아의 위대한 거인들까지 작가는 두루 섭렵하며 러시아를 종횡 주유합니다. 그래선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처럼 쉼 없이 달려간 300여 페이지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마치 이 정도면 러시아, 다 끝낸 것이 아닌가 하는 자만감마저 들게 하였습니다. 더 이상 들어갈 곳 없는 포식, 맞습니다.
샐러리맨으로 일하며 책을 쓰는 비상한 이 책의 작가 송종찬, 그는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낸 90년대 초반 등단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선가 그는 러시아의 과거 현재의 역사적 사실적 소재와 요소들을 꽤나 인문적으로 말랑하게 묘사합니다. 에세이는 처음이라지만 기성 시인답게 각 편 말미엔 각 주제에 부합하는 시인의 소회를 담은 자작시까지 배치해 러시아를 읽는 독자의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산문과 운문의 절묘한 마리아주로 독자의 좌뇌우뇌를 순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머리에서 출발한 러시아의 각각 팩트들이 밑으로 내려가며 오감으로 퍼져 잠시 머물다 궁극적으론 심장에 도달하게 하는 그런 이해의 경로를 거치게 합니다.
러시아의 풍경, 향기, 울림, 맛, 감촉 등에이어지는 설렘..시인이 개입하면 산문도 이렇게 되나 봅니다. 제가 절대 갈 수 없는 길, 시인은 과연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