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개봉을 기다렸던 영화였는데 코로나에 용해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TV VOD 목록에서 발견하고 바로 감상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롬멜에서는 사막의 여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후 2차 세계대전 분수령인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연계된 서유럽 전투 지휘관 시절부터 사망까지인 그의 말년기가 보입니다. 포 쏘고 총 쏘고 기총도 난사하지만 영화는 전쟁영화 답지 않게 영화 속에 묘사된 그의 품성처럼 조곤조곤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물론 그의 상관인 히틀러 총통도 등장합니다.
사막의 여우는 북아프리카 사막 지역에서 신출귀몰했던 그의 전투 능력에서 기인한 그의 별명이자 이름만큼 유명해진 불멸의 훈장입니다. 그곳에서의 혁혁한 전공으로 그는 독일 군 역사상 최연소로 원수에 오릅니다. 처칠마저 존경해 마지않던 적장, 연합군의 유럽 상륙 지역을 칼레가 아닌 노르망디로 정확히 예측한 예지적 군사전문가, 히틀러의 부하이면서도 히틀러의 명에 반대 의견을 내고 나치에 대해 회의적인 식견을 가진 착한 독일군, 결국 그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히틀러가 내리는 독약을 마시고 죽게 됩니다.
그를 아꼈던 히틀러의 입장에선 읍참마속의 심경으로 그를 베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러한 것이 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죽음을 자살로 포장하고 국장을 치러줬으며 남겨진 그의 가족에겐 연금까지 받게 해 줬으니 말입니다. 히틀러와 독일을 위해 그가 이룬 무공이 찬란하기도 했지만 발키리 작전ㅡ 동명 제목으로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있지요 ㅡ이라 불리는 히틀러 암살 사건에 그가 인지는 했을지언정 가담하지 않고 설마 하며 가벼이 넘긴 것도 고려되었을 것입니다.전혀 여우스럽지 않은 영웅의 최후입니다.
나는 롬멜의 이름을 초등학교 때 엉뚱한 곳에서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그 롬멜을 너무나 갖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탱크 롬멜입니다. 우리 때 사내애들이 자라면서 갖고 노는 장난감 중에 조립식 장난감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었지요. 요즘은 프라모델이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움직이는 장난감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건전지를 넣은 리모컨을 통해 조립품에 내장된 모터를 작동해 움직이는 구조의 장난감들입니다.
그중 사내랍시고 탱크는 최고의 장난감이었습니다. 당시 그것들을 판매하는 업체는 합동과학과 아카데미가 양대산맥이었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 창유리 안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탱크 박스들이 밖에 선 사내애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 대부분은 헛발을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엄마랑 내기해서 시험이라도 잘 치면 포상금을 타서, 명절에 가욋돈이라도 생기면 평소 찍어놓은 그것들을 사러 달려갔습니다. 그 박스를 풀어 그것을 조립하고 완성해서 움직일 때의 쾌감이란..
그중 가장 비싼 게 롬멜 탱크였습니다. 포장 박스도 제일 컸고 화려했습니다. 당시 보통 장난감 탱크들은 전후진만 작동되는데 롬멜은 좌우 움직임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건전지도 2개가 아니고 4개, 모터도 하나가 아니고 2개, 부속 전차병 인형도 무려 4명인 탱크의 끝판왕.. 아쉽게도 나는 끝내 롬멜 박스를 풀지는 못했습니다. 먹고 사는 게 만만치 않았던 우리네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롬멜하니까 독일 행진곡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 시절 맹위를 떨쳤던 독일 군가로 우리 귀에도 매우 익숙한 '옛 친구'라는 곡입니다. 미국에 '성조기여 영원하라'라는 행진곡이 있다면 독일엔 이 곡이 있습니다. 코로나 비상 시기, 가슴 펴고 힘차게 앞으로 행진을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