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허무

제5장

by kayla

한 아이가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벽을 다듬고, 문을 만들고, 작은 깃발도 꽂으며 정성스레 만들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왔다. 공들여 만든 성이 천천히 무너졌다. 아이는 무너진 모래성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차피 무너질 거였는데.
애초에 바람이 불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속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어차피 무너질 거라면, 뭐든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는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쪽에서도 누군가 모래성을 쌓고 있었고, 파도에 떠내려가는 또 다른 성도 보였다. 다들 열심히 만들다가, 결국 무너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는 손에 남은 모래를 털었다. 그리고 다시 한 줌을 쥐었다.
이번엔 더 크게 쌓아볼까, 아니면 그냥 파도를 보러 갈까?

아이는 무너진 모래성에서 깃발을 챙겨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가 쌓는 것들 역시 모래성과 같은 것일까?

우린 우리의 모래성을 열심히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 모래성이 무너졌을 때 큰 허무함을 느낀다. 그 허무함은 무엇일까.

허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똑같이 볼 수 있게 해주는 저울이다. 모든 것의 무게를 같다고만 답하는 저울. 사과와 코끼리도 같은 무게, 바다와 하늘도 같은 무게라고 말하는 저울이다. 그 저울은 허망함을 심어주기도, 안정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나의 힘듦도, 다른 사람의 힘듦도 같다며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준다.
나도 그저 많은 힘든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내 옆사람도 나도 같다고 말하는 허무는 무언가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의미는 그저 흘러갈 뿐, 우리에게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 말도 안 했을지 모른다. 그냥 나 혼자 뭔가를 만들어 가져가는 것일지도.
저울은 생명이 없으니.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내 안에 떠도는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