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할 대상이 너밖에 없다니. 듣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멍청한 너말이야. 사실 여기 오기 전에도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어. 남편도 마찬가지야. 알았지만 서로 모른 척했던 거지. 그도 조난당한 사람에게 진심을 말하긴 힘들지 않을까? 넌 차라리 편하구나. 진심이 없으니까.]
유리는 진술을 끝내고 캑캑거렸다. 잘게 자른 사과를 건내자 그는 고개를 쳐박고 쪼아 먹었다. 매끈한 부리와 번들거리는 눈을 보니 유리라는 이름이 우주인에서 따온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의 고백을 새된 소리로 전달하는 새라니 꽤나 기괴한 일이지만 앵무새라는 생물은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단지 모방해서 말할 뿐임을 상기했다. 유리의 표현에 애도나 슬픔은 없었다. 죽은 자가 한 말을 저장했다가 재생했을 뿐이다.
16호를 구조했을 때 김대표는 무중력실에 둥둥 떠 있었다. 옆에는 거대한 퍼즐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앵무새가 아닐까 추정했다. 구조되기 열흘 전에 죽은 김대표의 사인은 저혈당 쇼크였다. 조사 결과 거의 한달 분량의 인슐린 캡슐을 삼킨 걸로 확인했다. 나는 수많은 나노약제가 캡슐에서 방출되어 위벽에 거미처럼 붙어 약물을 주입하는 광경을 상상했다.
앵무새 유리는 탈진된 채 구조되었다. 김대표가 무중력실에서 나오지 않은 이후로 먹이에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 사료통이 충분히 차 있었는데 말이다. 유리는 왜 먹지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어차피 진심을 말하는 새가 아니니까. 괜히 말걸었다가 김대표의 고백을 되풀이해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새에게 말하고 새가 되풀이하는 말을 메아리처럼 듣고 있었을 김대표를 떠올렸다. 이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던 걸까. 듣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멍청한 너는 유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 걸까.
나는 유리가 다시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어떤 말을 가르칠까 생각하며 그의 반들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가 왜 날게 되었는지 알아? 그게 다 중력 때문이야. 벗어나고 싶었거든.”
- 끝 -
유리 가가린은 우주비행 때문에 유명해졌고 우주비행 때문에 34세로 죽었다.
인간은 모순 때문에 존재하고 모순 때문에 힘든,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다.
가상체험이 일상화되면 몸을 쓰는 놀이가 인기를 끌지 않을까?
고독을 추구하면 외로움이 더 뼈져리지 않을까?
무중력을 즐기다 보면 중력이 그립지 않을까?
진심을 좇다 보면 진심이 밉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