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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3x3 Stories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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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페로 Oct 21. 2021

유리의 전말 (2)

[내가 업계 최고라고 여긴 자부심을 좌절시킨 게 이거야. 최근 5년새 완구업계의 베스트는 내 회사가 자랑하는 브레인 커넥트  시뮬레이션 전쟁물이 아니라 놀랍게도 직접 피스를 찾아 맞추는 구식 게임이라니까.  100년 전쯤 유행하던 직소 퍼즐을 입체형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무중력실 퍼즐 맞추기가 유행처럼 퍼지고 오로지 퍼즐만 할 목적의 힐링 우주여행 프로그램까지 생겼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뭐 나도 동참했으니 말 다했지. 회사고 뭐고 다 떠나서 몰입할 무언가 필요했거든. 


처음으로 택한 건 독수리였어. 훨훨 날아 날개를 맞추고  3000피스 중 마지막 조각을 끼우는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이 일더라. 난 자유롭고 이런 극한의 고독한 상황도 즐길 만큼 강하고 인생의 모든 조각을 맞추는 사람이구나!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쾌감을 만끽했어. 세상 혼자인 게 이렇게 신날 줄 누가 알았을까. 너는 이해 못 하겠지. 


신나는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어. 20개나 되는 모든  퍼즐 세트를 완료하고 만세를 불렀는데 사방이 고요더하라. 머릿속의 불꽃은 곧 사그러들었어. 시스템은 내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고, 20세트를 가장 빨리 완성한 사람이라고 축하해 주었지만 불꽃은 다시 타오르지 않았어. 두 시간 걸려 남편에게 내 기분을 전달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야. 이런 취미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달리 할 일이 없어 퍼즐을 다시 맞추기 시작했어. 꼬박 5일 걸렸던 것이 두 번째에는  3일 걸리더라. 다음엔 1일만에 완성했지. 수월해지는 만큼  흥미도 사라졌어. 만드는 동안은 몰입했지만 완료하고 나면 창으로 보이는 암흑이 더더욱 깊어 보이더군.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보다 지구에서 더 빨리 멀어지는 기분이었어. 회사는 내가 없어도 너구리들 덕에 잘 굴러갈 거야. 남편이 보내는 메시지는 오늘도 어제도 조사 빼고 늘 같은 내용이야. 행간에서 읽은 감정은 귀찮음이었어. 


시간이 갈수록 끝내는 게 두려워졌어. 마지막 한 조각을 끼우고 나면 머릿속에  구멍만 커지는 것 같고 말이야. 내가 우주 공간만큼이나 희박하고 빈 사람 같았거든. 집으로 돌아가면 불꽃이 일어날까? 글쎄 모르겠어. 이미 구멍난 뇌에는 점화장치가 없어졌을지도 몰라.]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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