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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페로 Oct 08. 2020

내 사랑에게 죽음을 선사한 담배연기

영화 ‘내 사랑’ - 흡연의 위험성을 몰랐던 그 시절

흡연 인구가 줄고 있다. 코로나19 이환 시 예후가 좋지 않은 고위험군으로 흡연자가 꼽힌다. 이 와중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실외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연애도 못하는데 건강하게 오래 살면 뭐합니까?” 음, 뭐라 대꾸하기 어렵다.


담배를 보면  뽀족한 몸에 뾰족한 얼굴을 한 여성이 떠오른다. 영화 ‘내 사랑’에서 주인공 화가 모드는 헤비 스모커다. 음주 장면은 초반에 잠깐 등장할 뿐이지만 흡연 장면은 영화 내내 등장한다. 그녀의 삶이 어떻게 종료될지 보여 주는 장치다.



모드 루이스(1908-1970)는 캐나다의 화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고 류마티스관절염으로 인해 다리를 절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남편 에버렛과 작은 집에서 살면서 빈곤한 삶을 이어갔지만 끊임없이 회화 작업을 계속했다. 소박하지만 자유롭고 따뜻한 그의 그림은 1964년 이후 인기를 얻었고 캐나다 전역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안타깝게도 그의 생에서 인정받고 풍요로웠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아, 몇 년 후 폐기종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최근 하루 담배를 20개비 이상 피우면 폐기종의 위험성이 17배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지만 모드는 이런 경고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흡연의 유해성이 인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 초에  담배가 암과 관련되었다는 연구들이 등장했지만 공식적으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1950년대에는 동물실험과 인간 대상 임상에서 흡연과 폐암 간 연관성을 보여 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보건성에서 담배가 폐암, 기관지염 등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공식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1964년의 일이다. 1970년에 사망한 모드가 한참 담배 피울 시절에는  흡연의 위해성조차 확립되지 않았으니, 의학적∙사회적∙문화적 제약 없이 유해물질을 흡입한 셈이다.


담배의 위해성에 대해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권장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구취 제거에 도움이 된다거나 사회적 교류의 목적으로 담배를 권했다. 여성의 흡연을 남녀평등의 일환으로 여겨 부추기던 시기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에서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상류층 숙녀 키이라 나이틀리가 치장하며 근사하게 담배 피우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시대 분위기에서는 멋지지만, 21세기 한국이라면 실내 흡연 무개념 종자다.


영화에서 담배는 남성 간의 교류, 경쟁을 보여주는 코드로 종종 사용된다. 군대나 조직에서 사회적 유대를 위해 흡연하는 문화가 아직 있다. 소셜 스모커라고 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고독과 고립을 보여 주는 장치로 담배를 이용하기도 한다. 외롭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끊임없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하나가 흡연이다. 영화 '조커'에서 외로운 아서 플렉은 끊임없이 흡연한다. 모드도 마찬가지다.  


'조커'도 화면에서 담배냄새 나는 영화다. 흡연이 그의 고독을 보여 준다.


흡연의 동인을 사회적 결핍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욕구가 있지만 이를 충족하기 위해 유대를 형성하기보다는 담배를 피운다는 이론이다. 외로움의 정도가 흡연과 연관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연구에서 외로움이란 단순히 연인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외로움의 정도를 점수로 평가한 것이다. 연애를 못 해서 담배를 못 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전적으로 틀리지는 않으나 비겁한 변명일 수 있다. 외로움을 타파하는 수만가지 방법에 연애와 담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드의 지병인 류마티스관절염은 치료법이 발전한 현재에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만성질환이니, 20세기 초중반 환자에게는 천형과도 같았을 것이다. 가난과 질병은 사람을 고립시킨다. 관절염으로 신체가 자유롭지 못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적 없는 모드에게 담배는 그림과 함께 외로움을 이겨내는 친구 노릇을 했을 수도 있다.


영화 내내 담배 피우는 모드



영화의 원제는 주인공의 이름인 ‘Maudie’지만 국내에는 ‘내 사랑’으로 개봉했다. 관람 전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보고 나니 괜찮은 제목이다. 내 사랑이라 말하는 주체는 모드가 아니라 투박하지만 한결같은 남편 에버렛이다. 모드가 폐기종으로 가망없다고 선고받자 에버렛은 글썽거리며 아내가 담배를 끊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다시 없는 사랑인 모드를 보내고 작은 집에서 외로운 삶을 몇년 더 지속했다.


에버렛 입장에서는 지병과 담배가 그의 사랑을 앗아간 셈이다. 내 사랑은 모드의 그림처럼 소박하고 예쁜 사랑 영화지만 오래도록 기억나는 것은 홀로 남은 에버렛의 쓸쓸한 모습이다.  


연애도 못하는데 건강하게 살면 뭐하냐는 흡연자 동료에게 미래의 그녀를 위해 금연하라고 누누이 잔소리한다. 현재 흡연하지 않아도 과거 흡연력이 있으면 폐질환 위험도가 높아진다. 연인이 생긴 후에는 늦을 수 있다.


물론 잔소리도 금연보조제도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효과적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 '금연주식회사'에서는 남편의 성공적인 금연을 위해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하고 손가락을 절단하기도 한다. 담배 끊는 게 오죽 어려우면.  


담배와 함께한 모드의 삶.


참고문헌

Lee CM, et al. J Korean Acad Fam Med. 2007;28:575-588.

Dyal SR, et al. Subst Use Misuse. 2015;50(13):1697-716.

Zhang C, et al. Ann Transl Med. 2020 May;8(1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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