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렇게 보내네
#동지 #첫눈
한 해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날, 거짓말처럼 거제도에 함박눈이 내렸고, 마침 이런 날 그는 이문세의 <사랑 그렇게 보내내>를 부른 음성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영화처럼 생기니, 그냥 보내면 안 될 날이었다. 일상을 마무리하고, 깊고 긴 밤 줌을 켜 놓고 각자의 술잔을 채워 마주 앉았다.
그가 올해 봄 내 생일에 보내주었던 선물은 화상 미팅을 할 때 쓸 수 있는 성능 좋은 마이크였다. 지난한 역병 시절, 가뜩이나 멀리 살아 자주 보지 못하니 선물을 핑계 삼아 화면으로라도 마주 앉아 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늘 보자 만나자 이야기하자 한 건 그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마음만 부풀리는 쪽이었다. 다만 이마저도 생일 직후 사고처럼 생긴 ‘그 일’ 때문에, 서재 한쪽으로 치워둔 그의 선물을 풀어본 건 여름마저도 꺾일 무렵이었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지만, 아마도 다 짐작하고 있었을 거고, 그게 바로 다 사실이었을 거다. 이문세와 이영훈 작곡가, 그리고 <사랑 그렇게 보내네> 의 사연을 들으며, 나는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위로도, 안부도 그 노래 한 곡이면 되었다.
멀리 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마음 가까이 사는 사람들, 그런 이들 사이에 생기는 공명현상 같은 것. 내가 어떤 이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내 뒤에서 무거운 기타를 메고 걸어준 사람. 공항서 나를 보내주고, 반겨준 사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선물처럼 불러 보내주는 사람. 떨어져 사는 시간이 훨씬 길지만 멀리 산 적이 없던 사람.
오로지 슬픔과 분노를 오고 가는 시절에도 내게는 이런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K가사랑한순간들 #K가사랑한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