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은 내 욕구에서 비롯되지.
결국에는 동생 차를 얻어 타고 새언니 병문안을 다녀오고야 말았어. 그것도 한밤중 빗길을 뚫고서...
어떻게든 병문안도 생략하고 욕도 안 얻어먹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다 궁리해낸 게 평상시 안 하던 큰 꽃바구니를 보내 보자는 거였는데, 결국에는 꽃바구니도 보내고 병문안도 다녀오게 된 거지.
사람 도리가 그러는 게 아니라는 엄마의 말씀에 하는 수 없이 노인네 맘 편하게 해주려고 다녀왔어.
그런데, 왠지 미뤄뒀던 숙제를 끝낸 느낌이 들어.
홀가분하네.
새언니는 사고 후 며칠이 지나 선지 붓기가 가라앉은 듯 보였고 사고 당시엔 출혈이 엄청 많았다는데, 면회 가서 보니 큰 외상은 없어 보여 다행이더라고.
그런데 근 2년 만인가 오랜만에 본 새언니가 핼쑥하니 말라 있는데, 왠지 가슴이 짠해지더라.
못 본 사이 더욱 노화의 그림자가 덧씌워진 탔이겠지만 좀~마음이 아프더라고.
짧은 면회를 뒤로하고 근처에 사는 큰오빠를 데려다주고 차를 출발하려는데.
그때 늦은 시간이지만 잠깐 집에 들러 두릅을 가져가라고 말하는 큰오빠를 뒤로하고
우리는 바삐 출발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어.
큰오빠 표정이 왠지 쓸쓸하고 힘없어 보였던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 오빠를 뒤로 하고 밤길을 내달리기만 했어.
시내를 벗어나 예전 내가 살던 둔촌아파트 뒷길을 지날 때쯤 동생에게 이런 얘길 했어. "아마도 큰오빠가 서운한 거 같더라. 차에서 내릴 때 큰오빠 눈빛이 외로운 거 같았는데, 오빠한테 미안하다."
남동생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것저것 다 신경 쓰고 맞출 순 없는 거야"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
곧이어 동생은 또 이런 말도 했지 "많이 안 다친 것 같아 오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엄마 때문에 엄마 말에 휘말려 들어 병문안을 하게 된 거야"
이 얘길 하는 동생은 지금 몹시 피곤하고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인데, 점심을 끝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을 채 마치지조차 못하고 운전해서 왔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할 때 동생의
말이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동생에게 순간 이런 말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길 잘한 거 같아, 오지 않았다면 마음에 걸렸을 텐데, 힘들어도 다녀가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하다.
해야 할 일을 마친 기분이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어.
사람들은 싫다 싫다 하면서도 때려치우지 않고 직장을 다니고 다시 때려치웠다가도 또 다른 직장을 잡는다.
왜?... 그럴까?...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돈을 벌어먹고살려는 거 몰라서 묻는 거냐고?
아니 몰라 묻는 건 아니고.
싫은 일을 그것도 수십 년씩 반복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는 거야.
또 바보 같은 소리 한다고?
그래 어쩌면 바보 같은 소리일지도 몰라.
매번 싫다면서 아침이면 툴툴대며 출근하고 넌더리가 난다면서 명절이면 몇 시간씩 차 안에 갇혀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다녀오고 나서 치를 떨며 다신 안 가겠다 다짐 하지만, 치매도 아닌데, 다음 명절이면 또다시 내려가고 마는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니?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희 주관적인 나의 생각인데,
싫은 느낌이 잔뜩 인데도 불구하고 뭔가를 할 땐 숨은 욕구 때문인 거 같아. 싫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필요로 하는 절실한 욕구.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이여 없어져라" 주문을 외면서도 기억상실 환자처럼 해마다 고향을 찾아가곤 하는 건 그곳에 찾아갔을 때 나를 충족시켜주는 느낌이 뭐라도 있기 때문일 거야.
그게 가족과 함께여서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이든, 나를 환영하는 가족들이 환대하는 느낌이든, 보호받는 느낌이든, 안온한 느낌이든, 다정한 느낌이든, 시끌벅적 도란도란 북적이는 느낌이 좋던지, 싫음에도 내가 할 일은 하는 성인이구나 하는 책임감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이든지 그게 뭐든 충족되는 욕구가 있어 거기에 간다는 거야.
이도 저도 싫은 느낌만 한 소쿠리 가득이라면 나처럼 가족 행사엔 나타나지 않는 법이거든.
싫다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하는 일 뒤엔 싫은 느낌보다 명명백백한 욕구가 숨어 있는 거지.
그냥 책임이니 하는 거다. 해야 하는 거니 하는 거다 따위는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꼭 해야만 하는 거라 할 뿐이야"라고 하지만 실은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어 그 일을 한다는 것 그걸 동생에게 말하진 않았어.
아마 동생도 언젠간 알게 되겠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 표현하지 않았을 뿐.
돈을 버는 일이든 무보수 봉사활동이든 취미든 강제성을 뛴 그 어떤 일이든 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또 다른 선택일 뿐이라는 걸.
상사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태도에도 선뜻 반기를 들지 못하고 그 일에 공범이 되는 순간조차 그 일로 말미암아 내게 닥칠지 모를 일을 사전에 막고 내가 안전하게 회사를 잘리지 않고 회사를 다녀 가족을 부양하고 싶다는 욕구 등... 을 충족시키고자 한순간 내부 공모자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셈이지.
그러니... 결국은 그것도 내 선택 엔드 내 책임.
남들 때문에 거시기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이 이리
됐다. 네가 시켜서 이래 됐다. 이런 말은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다는 거지. 모든 선택은 자신의 욕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지. 그것이 선한 것이든 불선한 것이든...
남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도 다 자기 맘속을 살펴보면 돕고 싶은, 혹은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것이 죄책감이든 뿌듯함이든 자기 존재감의 확인이든 수치심에서든 두려움에서든 자기 맘에서 원하는 것이 있어 하는 일이란 거다.
세상에 수많은 남을 위한다는 일들조차 알고 보면 자기 안의 욕구를 채우고자 한 선택이었음을 잊지 않는다면 남 탓은 결코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결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만큼 숭고한가 하는가는 잘 모르겠다. 보편적이지 않은 영웅들도 가끔은 있는 것도 같으니...
보편적이지 않은 것은 논외로 하고. 그 부분은 패스하기로~~ 나답게 하고
싶은 데까지만 하고 나몰라라 줄행랑~~ 이것이 내 스타일이다.
처음엔 진지모드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 될 대로 대라모드 작동.
바이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