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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Nov 07. 2024

늙은 오동나무 그늘 / 권분자

산문


늙은 오동나무 그늘

 


권분자



죽은 아이를 막대기로 내리치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20년 전 내가 손뜨개질로 수놓은 커튼이 낡음을 견디지 못해 분리용 수거통에 들어갔다 그 곁의 늙은 오동나무는 가장 긴 가지의 그림자로 커튼의 등짝을 내리친다 빙빙 도는 늙은 개 한 마리가 컹컹대며 나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유리창을 지켜주던 커튼이 떠나고 지난 여름 나의 집은 투명하였으나 어둠이란 암막이 번갈아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손뜨개질 풍경 속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동네 아이들이 산머루 따러 올라갔던 어둑한 산이 새겨져 있다 네 명의 아이는 사망한 채 발견 되었고 한 아이만 간신히 생존했던 그날의 사건, 아이들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청송 교도소 혀를 길게 늘어뜨린 개<세파트>였다

 

커튼이 밖으로 내몰리자 오동나무 주위에는 흑과 백의 눈으로 세상을 가늠하던 슬픈 시의 원고들이 일제히 파지가 되어 잎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죽은 손자를 때리던 노인의 슬픔을 나는 이제서야 온전히 알아버린 나이, 늦은 깨달음 하나가 내게 다가오기까지 오동나무의 하늘을 날던 새는 수없이 긴 꽁지를 갈아끼웠을 것이다

 

이 마을의 내 또래 사람들은 모두 흑과 백의 슬픔을 먹고 자랐다 일부는 떠나고 남아있는 그들은 안남安南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 까르르 벙그는 아가의 입술로 오동나무 주위를 맴돈다 키 낮은 슬픔을 하늘로 전송하던 오동나무도 너무 늙어버려 희미한 숨결만 남았다

 

자신의 잎을 뒤집어 상처 난 자국을 또 할키는 벌레들에게 오동나무는 이제 몸통까지 내어주려 한다 생의 무의미한 축제 앞에서 버마 아옹산 사건에 묻혀버려 보도되지 못한 마을의 슬픔은 나 혼자 안고 가겠다는 듯 커튼처럼 펄럭이고 있다

 

아이가 타고 나온 유모차와 늦가을 참깨를 툭툭 털고 들어가는 허리 굽은 여자의 유모차가 교차하는 지점, 그 오동나무 아래 내다 놓은 내가 수놓은 슬픔의 커튼은 커다란 벌레의 몸처럼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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