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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手帖 / 권 분자

산문

by 권작가
엄마의 수첩.jpg


오래된 手帖


권 분자


누군가가 던져놓고 간 새 다이어리를 바라보는 어머니!

오래 되어 표지 덜렁거리는 수첩을 내놓으시며 옮겨 적으라 하신다.

수첩 갈피들 사이사이에 까맣게 그어진 줄은 못 받은 곗돈과 꾸어준 돈,

빈 소주 맥주병까지 팔아서 빌려준 삼 만원도 보인다.

평균수명 훌쩍 넘긴 연당댁, 중들댁, 소일댁 순서대로 읽는다.

-지워라

-돈도?

-그래 지워버려라

-콩나물할매, 선생댁은?

-옮겨 적어라

내가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누구는 지우고 누구는 옮겨 적으라 하신다.

인연의 갈피들을 잡초인 양 솎아내는 어머니께

나는 투덜거린다.

-나이와 처지가 비슷한 또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왜 자식들만 자꾸 찾냐?

-……

한마디 쏘아버린 뒤

말이 없으신 어머니께 미안해진 나는 은근슬쩍 애교를 부린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화 난 건 아니지?

-……

말없이 허공만 응시하던 어머니는 낮게 웅얼거리신다.

-다 죽고 없는데 우짤끼고…


*


늙으신 어머니의 인연을 잡초처럼 솎아 내던 나!

언제부턴가 나의 짤막한 하루의 메모들이 탄식하는 저녁이다.

분주하던 나날이 저물어가는

예순의 나이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구순의 나의 어머니도 아마

이때부터 오랜 인연을 하나씩 하나씩 지우셨으리라 생각하며

탱탱하던 나의 인연들이 빠져 나갈 때마다

일어서는 두 다리가 헐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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