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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패턴 / 권분자

산문

by 권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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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패턴


권분자



길을 가는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대답했다. 매일 밤, 전화를 하면서 아파트 둘레를 걷고 있는 나를 보게 되더라고…. 나의 무심한 패턴이 타인에게 이렇게도 각인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습관으로 걷던 일이었다. 나로서는 별다를 것 없는 하루의 패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장면이 기억될 만큼 뚜렷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행동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은 각자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기에 그 누구의 시선도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누군가의 인사를 받으며 내가 누군가의 일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내 무심한 밤의 루틴을 지켜보며, 나를 기억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자신이 남긴 흔적에 얼마나 무관심한가. 그러나 무심코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겐 하나의 기억이 되고, 풍경이 되고, 인상으로 남는다는 것을…, 타인의 시선 안에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의 조연이 되고, 주연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날 이후 전화기로 일으키던 소음 대신, 꽃과 나무 또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보이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어쩌면 누군가 그 순간의 나를 기억하더라도 최소한 소음은 되지 말아야했다. 그것은 경계가 아니라, 작은 배려였다. 나의 평범한 반복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았던 삶에도, 누군가의 시선은 머물러 있었고, 나는 그저 그렇게 누군가의 풍경이 되었다.

어쩌면 도시의 모든 밤은 누군가의 기억으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전화를 하며 걷는 사람, 그 사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 우리는 서로의 삶에 얽히어 조용히 지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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