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실수
**시내 골목**
시내의 거리가 조금씩 어둑해지고 가로등이 골목을 밝히면서 또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식당의 저녁 손님이 하나둘 빠져나갔고, 정리를 마친 직원들도 한 명씩 집으로 돌아갔다.
형원은 오늘 달수의 뒤를 밟기로 마음먹고 식당이 보이는 멀찍한 곳에 인력거를 세워두고 서성였다. 그러던 중, 달수가 식당에서 천천히 나왔고, 그의 움직임에 맞춰 형원의 눈동자도 서서히 따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형원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설마 싶었는데, 점점 가까워지자 그의 목표물이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어?이게 아닌데..."
"안녕하세요, 뭐가 아닌가요?"
"아닙니다, 타실 건가요?"
"그럼요, 설마 제가 끌겠습니까? 하하."
"이 식당은 벌이가 좋나 보네요..."
"네?"
"아닙니다. 여기분들이 많이들 타셔서요..."
형원이 힘껏 인력거를 끌었고,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이제 달수를 탐색할 기회였다. 그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중, 앞쪽 공터에서 야바위꾼이 판을 벌리고 있어 이를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들로 꽤나 북적이는 광경이 보였다. 형원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사람들에게 길을 터달라고 요청했고, 열린 길로 다시 인력거를 끌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달수가 운을 뗐다.
"이 일 하신 지 얼마 안 되셨죠?"
"다들 뭐죠? 서로 같이 짜셨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닙니다. 이번에는 뭐가 또 이상한가요?"
"대부분 오래 하신 분들은 하루 종일 이 일을 하다 보니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게 습관이 되어 있거든요. 숙련자들은 방금과 같은 경우 미리 자리를 터달라고 소리치죠. 그래야 멈추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거든요. 멈출 때와 다시 출발할 때가 가장 힘이 많이 들거든요."
형원은 이 말에 ‘이거 끌다가 정체가 다 탄로 나겠네.’라고 혼자 씁쓸해했다.
"그렇죠. 그런데 저는 워낙 힘이 좋아서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일이라는 게 힘만으로 되는 건 없어요. 경험이 쌓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도 익숙해지고, 머리도 적응하게 되죠. 근육뿐만 아니라, 뇌에도 '근육'이 생긴다고 봐야죠."
"뇌에도 근육이라... 재밌는 표현이네요."
"아시겠지만, 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신분을 감추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매번 즉흥적인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에 능해야 해요. 예전에 기차를 탔는데, 일본 군인들이 승객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꼼짝없이 잡힐 상황이었는데, 그때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아십니까?"
"뭘 제가 안다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막 자신의 신분을 밝히셔도 되는 건가요?"
형원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저희 칸에 마침 시계랑 만년필, 손거울, 안경 등을 파는 상인이 있었어요. 재빨리 그에게 모든 물건을 사들여서, 저희도 똑같이 물건을 파는 척했죠. 군인들은 저희를 상인으로 착각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때 함께 탔던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신채호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신 선생님께서는 저를 볼 때마다 '생명의 은인'이라며 반가워하셨죠. 제가 계속 보필해 드렸다면 얼마 전 그렇게 잡혀가지는 않으셨을 텐데..."
달수는 말끝을 흐렸고, 형원은 그의 말에 흔들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라니! 그는 신채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독립에 대한 꿈을 키웠고, 얼마 전 그의 체포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했다. 그런 분의 이름을 들으니, 형원의 심장은 뜨거워졌고, 달수와도 묘한 유대감이 생기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책없이 감상에 젖었네요."
"...아닙니다."
진과 약속한 게 있으니 정체를 숨기기 위해 형원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아까 뭘 짰다고 물으신 건가요?"
“뭐, 사장님도 저한테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서요. 인력거 오래 안 끌어본 듯 하다고. 하하. 그 예진인가? 그 아가씨도 그렇게 말했고요. 그 있잖아요. 식당에서 일하는. 그 애와 사장님은 참 가까운 거 같아요. 집까지 들어가서 뭘 하시는지. 그나저나 선생님은 이 도시에 언제 오신 건가요?”
자기도 모르게 사장이 예진의 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발설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형원은 아차 싶었다. 자신이 사장을 미행한 걸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었다. 그는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말을 돌렸다.
"한 2년쯤 됐을 겁니다. 아, 이제 다 왔네요. 여기서 내려주시면 됩니다."
별일 없을 거야. 이 사람은 우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야···라고 형원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방금 실수는 진에게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달수의 집**
난과 전화기만 달랑 놓인 그의 집에 불이 켜졌다. 달수는 신이 난 듯 곧장 화분으로 달려갔다.
"내가 말야. 사장, 그 여우 같은 늙은이가 눈치가 빨라서 여기 식당에 들어온 뒤로는 미행을 거의 못 했거든? 그래서 사장 놈 정보를 거의 못 캤는데, 드디어 오늘 아주 큰 정보를 얻었어."
그는 난을 정성스레 닦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애가 싹싹하고, 사장이 갈 곳 없는 애를 잘 챙겨준다고만 생각했지. 너무 어려서 생각도 못 했던 거지. 그 애도 독립군이야! 그 집에서 비밀 모임을 하는 게 분명해!"
난을 다 닦고 난 뒤 그는 곧장 전화를 들었다.
"네, 츠즈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경감님. 달수입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예진의 집**
“경찰이다! 문 열어라! 국가에 위협이 되는 비밀 회동이 이루어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지금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로 부수고 진입하겠다!”
열 명이 넘는 경찰들이 작은 문 앞에 서 있었다. 2~30초쯤 지났을까? 안에서 별다른 응답이 없자 경찰 하나가 다시 소리쳤다.
“즉시 문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들어간다!”
“잠시만요, 나갑니다.”
안에서 답이 들렸지만, 이를 무시한 채 군부대와 경찰들은 발로 문을 세게 걷어찼다. 문고리가 부서지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경찰들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안에는 주방 식탁에서 만두를 빚고 있는 예진과, 그 앞에서 손을 씻고 있는 사장 외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손만 씻고 문을 열려던 참이었는데··· 이게 무슨 소란이십니까?”
그때, 경찰들 사이로 츠즈키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누군가 사장님과 제 사이를 질투해 이런 장난을 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뭘 하고 계셨습니까?”
“만두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만두도 연구하면서요. 이제는 식당 일을 하루 종일 하기에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가다 보니, 미리미리 누군가에게 전수해 주려 합니다. 자식들은 지 아비가 하는 일을 보더니 다 도망쳐서요.”
“아이고, 그것도 모르고 참··· 이 아가씨가 차후에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의 사장님이 되실 분이셨군요. 미리 잘 부탁드립니다.”
츠즈키는 씩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 문은 내일 일찍 복구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다들 철수하라!”
곳곳을 샅샅이 수색하던 경찰들은 츠즈키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그 집을 빠져나갔다. 경찰들이 모두 나간 걸 확인한 츠즈키는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누가 다녀간 것 같은데요? 젓가락이 네 짝이나 나와 있네요.”
“아, 제가 늙어서 노망이 났나 봅니다. 자꾸 꺼낸 걸 까먹고 새로···.”
“사장님, 저보다도 체력이 이렇게나 좋으신데 늙었다니요. 하하. 그런데, 어린 친구가 벌써부터 책을 좋아하나 보네요? 이렇게 큰 책장에 책이 한가득이네요. 공간이 없어서 여기 바닥에도 쌓아두고.”
방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은 성인 두 명이 팔을 벌려야 할 정도로 넓었고, 천장에 닿을 만큼 높았다.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오른쪽 끝 부분 바닥에는 제법 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아닙니다. 이 어린 친구가 안타깝게도 오갈 곳이 없어 잠시 여기 머무르고 있는 겁니다. 이 집은 제 지인이 사업차 다른 지역에 가면서 저에게 관리해 달라고 맡긴 곳이라, 겸사겸사 이 친구가 머물고 있는 겁니다.”
츠즈키는 책장을 유심히 살폈다. 뭔가 낯설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바닥을 조심스레 밀어보았다. 살짝 덜컹거렸다. 오른쪽 바닥의 책들을 치우고 다시 힘껏 밀었더니 책장이 움직였다. 그리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작은 서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재 안쪽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츠즈키가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 너머로 외부 복도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났다. 경감을 뒤따라온 사장이 놀라며 말했다.
“와, 집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지인 분이 여기에 대해선 이야기를 안 해주셔서 저는 전혀 몰랐네요. 예진아, 이제 여기도 같이 청소하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츠즈키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책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장님, 오늘은 운이 좋으셨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운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제 제안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도 늦었으니 가봐야죠. 같이 나가시죠. 예진아, 잘 정리하고 오늘은 푹 쉬거라.”
“네, 안녕히 들어가세요.”
둘은 그렇게 집을 나서며 서로 인사를 건넸다.
**골목길**
경감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에서 달수가 나타나 츠즈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어찌 되셨습니까? 놈들은 잡았습니까?”
“내가 갔을 땐 아무도 없더군. 멍청한 녀석. 어디서 이상한 정보를 듣고 설레발을 친 거냐?”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럼 이 늦은 시간에 둘이 대체 뭘 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만두 만드는 법을 전수해 주고 있더군. 식당을 넘길 거라 하더라.”
“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건 식당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너무 쉽게 속고 오신 거 아닙니까?”
“뭐? 내가 너희 조선 놈들에게 속아서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왔다는 말이냐? 네놈이 감히 나를 비웃는 것이냐?”
츠즈키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달수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달수는 맞자마자 앞으로 꼬꾸라졌고, 츠즈키는 발로 몇 번을 더 쓰러져있는 그를 걷어찼다.
“죄송합니다, 경감님! 오늘 그놈들을 한 번에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커서 실망도 컸던 탓에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음번엔 더 조심하겠습니다.”
“병신 같은 놈.”
츠즈키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자리를 떠났다.
**달수의 분노**
츠즈키가 사라지자, 달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앞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찼다.
‘자기가 못 찾아놓고 왜 엄한 데서 화풀이야? 한심한 놈··· 근데 왜 못 찾은 거지? 분명 다른 놈들과 같이 봤을 텐데. 그럼 설마, 아직 그 안에 있는 건가?’
달수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니미럴··· 내가 그년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직접 물어봐야겠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는 예진의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예진의 집**
그가 도착했을 때,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수색으로 난장판이 된 집을 정리 중인 예진이 보였다.
몸을 굽혀 바닥을 정리하던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녀와 달수의 눈이 마주쳤다.
헐레벌떡 뛰어온 탓에 달수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그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예진은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신채호 (申采浩, 1880~1936)
신채호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민족주의 역사 서술의 선구자다. 을사늑약 후 망명해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며 항일 논설을 썼고, 독립운동 이념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저술해 우리 역사의 주체성을 강조했으며, 무정부주의 운동에도 참여했다. 1928년 체포돼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6년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신채호 평전』(박걸순,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