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애도
**사장의 집**
고아였던 예진을 딸처럼 아끼던 사장은 자신의 집에서 직접 그녀의 장례를 치렀다. 사장의 가족들과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식당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며 손을 보탰고, 진 역시 식당을 오가며 사장의 곁을 도왔다.
어린 나이에 가족이 따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밝고 주변 사람들을 잘 도와 시장 사람들과 단골손님들에게도 사랑받았기에, 문상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인과 중국인이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반갑지 않은 일본인이 하나 등장했다. 바로 츠즈키였다.
그가 들어서자, 문상객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츠즈키는 조용히 향을 피운 뒤, 예진의 영정에 절을 올리고는 사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진과 달수는 더욱 긴장하며 주의 깊게 경감의 행동을 살폈다.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제가 환영받지 못할 거란 걸 압니다. 하지만 따로 의도를 갖고 온 것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께서 예진 양과 마지막까지 함께 계셨던 분이니, 참고인 조사 차원에서 경찰서에 한 번 방문해 주셔야 한다는 것도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네, 장례가 끝나고 들르겠습니다. 식사라도 하고 가십시오. 저는 손님들을 챙겨야 해서 이만.”
경감은 그의 차가움에 잠깐 멈칫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최대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기에, 상대방의 무시는 기분 나빴으나 따로 드러내진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자신의 정보원으로 들어오면 그때 오늘의 더러운 기분을 되갚아주리라 생각했다.
“식사는 무슨··· 제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다들 불편하실 텐데요. 그냥 한 말씀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번 사건은 저희 쪽에서 벌인 일이 아닙니다. 혹시 오해가 생길까 봐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츠즈키가 말을 이어가려 하자, 사장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순간, 츠즈키는 본능적으로 하던 말을 멈췄다.
그러자 사장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오늘은 아무 말씀도 마시고 그냥 가주십시오. 오늘만큼은 조용히 그 아이를 조용히 보내주고 싶습니다.”
츠즈키는 순간적으로 강렬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전까지 겪어본 적 없는 조선인의 강한 기운에 당황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일본 경찰이 조선인 하나에게 눌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렇게 사장의 집을 나선 츠즈키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은이···곧 내 손바닥 안에서 놀게 될 텐데··· 오늘은 그냥 넘어가 주지.’
**사장의 집 앞**
그 시각, 형원은 그녀의 장례식이 열리는 집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는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어제 아침 진에게서 처음 그녀의 죽음을 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형원과 진의 숙소 (회상)**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그렇게 안 좋아?”
“······”
“무슨 일인데 너답지 않게 이러고 있어? 괜찮은 거야?”
“예진 씨가 죽었어. 살해당한 것 같아.”
그 말을 듣자마자 형원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어젯밤 달수에게 의도치 않게 흘린 이야기가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근데 이상한 게··· 사장님이 예진 씨가 연락이 안 된다고 헐레벌떡 집까지 뛰어갔거든. 보통 아무리 연락이 안 돼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잖아?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었던 거 아닐까 싶어.”
“어제저녁에 둘이 무슨 일이 있었나? 요 며칠 사장이 예진 씨 집에 들렀다 갔잖아.”
“예진 씨가 연구한 만두 같이 평가해 주고, 새로운 재료를 넣어보며 연구했다더라. 근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경찰까지 다녀갔다고 하더라고.”
“경찰이 왜? 사장님한테 들은 거야?”
“이유는 딱히 말 안 해줬나 봐. 그러고 나서 사장님이 경찰과 함께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더라···”
진의 말을 가만히 듣던 형원은 더욱 심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러곤 어젯밤 달수와 나눈 대화를 진에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넌 이제 달수를 의심하는 거야?”
“여러 정황을 보면, 어제 경찰이 온 건 그가 나한테 들은 정보를 경찰에 흘렸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잖아.”
“표면적인 것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지··· 설령 그게 맞다 해도, 그가 예진 씨를 죽였다고 보긴 어렵잖아.”
“그렇다고 사장님을 의심하는 건 더 말이 안 되지 않아? 그렇게 딸처럼 아끼던 아이를?”
“그럼 제3자가 있는 걸까?”
“그러게··· 아무튼 내 생각엔 달수는 너무 위험해. 장례식만 끝나면 우리 다른 도시로 떠나서 독립군을 찾아보자.”
“고민해 보자. 어쨌든 백야 장군님이 오시면, 그를 믿을 수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보자.”
**사장의 집 앞 (현재)**
형원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한참을 서성였다.
그때, 장례식을 마치고 나온 츠즈키가 문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그를 보는 순간, 형원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 놈을 족치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죽을 만큼 패버리면 실토하지 않을까?’
그는 이를 악물고 성큼성큼 츠즈키에게 다가갔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츠즈키 역시 형원을 발견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마침 잘됐구나. 경찰서로 가자.”
츠즈키는 형원이 자신을 노리고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단순히 인력거를 태우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형원의 머릿속에는 오직 주먹으로 그를 날려버리는 것뿐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단 두세 걸음 남았을 때, 갑자기 사장이 형원의 뒤에서 말했다.
“예진이를 보러 오셨소?”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장이 그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고, 형원은 그의 물음에 경감을 때리려던 것을 멈추고 사장을 말없이 바라봤다.
“이 집을 온 것이구나. 그럼 난 다른 걸 타고 가겠다.”
아까 안에서 사장의 고압적인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억압됐던 게 조금 민망했던 경감은 그를 보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와는 달리, 형원은 사장을 보자마자 다시 심정이 복잡해졌다.
과연 누가 밀정일까? 그리고 과연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왜? 그런데 이 일본 경감은 여기를 또 왜 온 것인가? 사장과 이놈은 과연 무슨 관계일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의문이 계속 교차했다.
거기에 자신의 실수로 그녀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그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아닙니다. 그냥 근처에 들른 겁니다.”
“그러지 말고 들어가서 그 애와 작별 인사라도 하고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숟가락 뜨고 가시게.”
마지못해 들어가는 척 사장에게 떠밀려 그녀 앞에 선 그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고개도 들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것저것 도우며 자리를 지키던 진도 그런 형원의 모습을 지켜보며 또 한 번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사장은 식당 사람들 몇 명과 함께 그녀를 화장했다. 그리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혼강으로 가 나룻배를 타고 그녀를 뿌렸다.
사장은 며칠 사이 몰라볼 정도로 야위었고,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진은 사장이 적어도 그녀를 죽이진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통화시 경찰서**
며칠 동안 사장은 식당에 나오지 않았다. 다들 나이도 있는 그가 혹시나 건강을 해치진 않을지 염려했다.
그러다 사장은 경찰서를 방문했다. 예진이 죽기 전 마지막을 함께했던 그였기 때문에 조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장이 츠즈키가 있는 자리로 다가가 인사를 하자, 츠즈키는 가식적인 얼굴로 그를 염려했다.
“며칠 새 얼굴이 많이 안 좋아지셨습니다. 그 아이는 잘 보내셨습니까?”
“그 어린 나이에 편히 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놈은 누굽니까?”
드디어 대어를 낚기 위해 자신이 정성스레 던져 놓은 미끼가 잘 먹혔다는 사실에, 츠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면서 묘한 웃음을 지었다.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송학선 (宋學善, 1897~1927)
일제강점기 항일 의열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로, 1926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한 ‘금호문 의거’의 주역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의 억압을 경험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6년 순종 국장일에 창덕궁 금호문 앞에서 총독을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법정에서 당당히 항일 의지를 밝히며 사형을 선고받았고, 192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