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밀고
**경찰서**
“어서 오십시오. 제 제안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 발로 찾아온 만두집 사장을 츠즈키는 반갑게 맞이하며 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누군지 알려주신다면,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츠즈키는 사장의 이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를 죽인 범인은 바로···. 너잖아요, 사장님.”
그의 대답에 당황한 사장은 잽싸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거기엔 츠즈키가 아닌 예진이 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사장님··· 왜 저만 두고 그냥 가셨어요.”
“미안하다··· 미안하다··· 근데 다행히 이렇게 살아 돌아왔구나.”
그는 죄책감에 바닥에 얼굴을 떨구었다.
“전 살아 돌아온 게 아니에요. 아직 구천을 떠돌고 있을 뿐이에요.”
“근데 넌 내 손으로 잘 치러 보내줬···?”
그녀가 황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에 속이 상해 대답하며 그녀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으나, 거기엔 다시 츠즈키가 있었다.
“자, 이제 답을 줬으니 내 정보원이 된 거야. 그날 저녁에 집에 누군가 더 같이 있었지? 그 놈들은 누구지?”
사장은 깜짝 놀라 일어나려다가 의자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다시 그를 바라보니 예진이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서 있었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 팔을 뻗고 있었다.
“저 너무 추워요.··· 저 죽인 놈··· 복수해 주실 거죠?”
“그래,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내가 해줘야지. 네가 그래야 편히 눈감을 수 있다면, 내가 해야지. 미안하다. 미안해···”
눈물을 흘리며 사장은 잠에서 깼다. 그러나 꿈이 너무나 생생해 뭐가 꿈이고 뭐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멍했다.
**사장의 집**
“여보, 식사하세요.”
아내의 부름에 마루로 가서 밥을 한 숟가락 떴지만 입맛이 없었던 사장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더 드세요. 그러다 쓰러지시겠어요.”
사장은 아내의 말을 뒤로하고 마루 앞마당으로 나갔다. 앞에 놓인 물통에 물을 받아 꽃에 물을 주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가 받을게.”
그는 식사 중인 아내를 지나 전화를 받으러 안방으로 뛰어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류가입니다.”
전화를 건 상대는 예진의 집에서 같이 봤던 자명이었다.
“그래··· 말하게.”
“예진이는 잘 보내고 오셨죠? 먼발치에서 지켜보긴 했습니다만···”
“덕분에 잘 보냈네. 근데 잘 갔는지는 모르겠네.”
“무슨 말씀이세요. 착한 아이니까 잘 갔겠죠.”
“···..자꾸 꿈에 그 애가 나와···”
사장은 이 말을 하며 한숨을 푹 쉬었고, 자명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날 일본 놈들만 보내고 그 애랑 좀 더 있다가 갔더라면 그 애가 이런 일을 안 당했을 텐데···”
“그건 선생님 책임이 아닙니다. 이리될 줄 알고 나오신 건 아니시잖아요. 그 애도 사장님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빨리 회복하셔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시길 바랄 겁니다.”
자꾸만 뭔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던 사장은 중요한 화두 하나를 던졌다.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본 경감이 왔었소.”
“예··· 저도 먼발치에서 보긴 했습니다. 굳이 그 자리에서 또 저번의 그 제안을 하던가요?”
“범인을 알고 있다는데, 그자가 밀정과 동일인인 듯하오..”
“그렇게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날 경찰서에서 경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날 경찰은 오지 않았을 거요···. 내가 그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제안을 수락하고 바로 행동했다면 그 애는 죽지 않았을 거요. 이 늙은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겠다고 내 정체가 들통나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다가 그 어린아이의 목숨을 잃은 꼴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냥 이건 아무도 예상 못한 사고일 뿐입니다.”
둘은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아무튼 그날 그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는 걸로 마무리된 사항입니다. 이건 사장님뿐만 아니라 저희 단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한 사항입니다. 이제 곧 다음 주면 백야 장군님도 오실 텐데, 오래 준비한 대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장님, 제발 그 부분은 생각조차 하지 말아 주세요.”
**달수의 집**
그날 그 사건 이후로 츠즈키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자기가 나름 큰 정보를 줬는데, 아직 자기가 쓸모가 큰 사람인데 이렇게 하대를 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났고, 초조함은 그 화보다 더 큰 상황이었다.
다시 수화기를 들어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리잔을 냅다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 던져버렸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들이 이곳저곳에 튀었다. 거울은 유리컵에 맞은 부분을 중심으로 일부분 떨어지거나 갈라져 있었다. 그래서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이 마치 지금 자신의 심정처럼 조각나고 일그러져 보였다. 그는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탁자에 있는 난을 수건으로 닦았다.
“츠즈키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걸까?”
···
“너도 어이가 없다고? 그렇지. 그 새끼가 나 아니면 뭐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
“그러니까, 니 말은, 츠즈키 그 자식이 나보다 더 거물을 원하는 거 같다고? 내 정보에 만족하지 못해서? 능력도 쥐뿔도 없는 새끼가 욕심만 많네?”
···
“아··· 그러니까 지금 사장 그 노친네를 자기 정보원으로 하려고? 와···. 그래서 난 찬밥이고?? 어이없네··· 근데 사장이 혹하는 게 있어야 배신을 할 텐데. 나야 처음에 엄마 수술비 때문에 시작했다지만, 그 노친네는 돈도 많을 텐데?”
···
“그 애 죽음에 대한 복수? 겨우 그런 말랑말랑한 감정으로 자기 신념을 포기한다고? 너무 간 거 아냐?”
**따르르르릉**
이때 마침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김달수입니다.”
“왜 자꾸 여기저기 전화질이냐? 정보원인 거 다 소문내려 하느냐?”
“제가 정보원이 맞긴 한 겁니까? 그날 이후 딱히 연락도 없으시고, 전화도 잘 안 받으시고요.”
“일이 바빴다. 알지 않느냐, 김좌진이가 이곳에 오는 게 바로 다음 주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목숨 걸고 밀고하여 알게 된 첩보인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전과 사뭇 다른 태도에 츠즈키는 짜증이 올라왔다. 가뜩이나 여기저기 전화를 해 자신을 찾는 통에 짜증이 나 전화를 한 것인데, 첫 말투부터 건방짐이 묻어나 이놈을 아직까지 그냥 살려둔 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오, 그래? 아주 고맙구나. 근데 목숨 걸고 다른 년도 죽였더구나. 이번엔 무슨 정보를 또 구하려고 그렇게 사람들이 빼곡히 사는 곳에서 총질까지 하셨을까?”
“사장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다 일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놈들 조직의 신뢰를 얻어 더 고급 정보를 빼내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그놈들 작전까지는 날짜가 얼마 안 남아 초조해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실수를 좀 했습니다.”
“네 놈이 실수라고 쉽게 말하는 그 짓 덕에 여기저기 수사 진행하는 거 막느라 얼마나 성가셨는지 알기나 하느냐?”
“죄송합니다···”
“그래서? 정보는 좀 구했느냐? 그년이 무슨 말은 좀 하더냐?”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건 우선 사장을 무너뜨리는 게 최선이라 판단한 달수는 순간 말을 지어냈다.
“음···. 사장과··· 같이··· 독립군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너나 나나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아니냐.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혹시 증거가 될 만한 것이라도 찾아낸 것이냐?”
어찌 말을 지어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그는 아끼는 난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싹 바뀌었다.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뭐?”
“아닙니다. 저···. 음··· 사장 이야기는 못 듣고···. 독립군 한 명을 더 찾아냈습니다. 그를 조사하면 이 조직의 내부와 이번 작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래? 그놈이 누군가?”
“음···.. 그자의 이름은··· 황익수입니다.”
그는 점조직에서 소개받은 유일한 두 명인 현우와 익수 둘을 모두 경찰에 밀고한 것이다. 그의 정체가 위험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우선 그는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
[독립운동가 인명사전]
박은식 (朴殷植, 1859~1925)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민족주의 역사 서술을 확립한 인물이다. 일제의 침략을 기록하고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을 저술했으며,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했다. 1911년 신민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으며, 1925년 상하이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