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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May 31. 2023

그들은 위대하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건 확실하다.

 병원 인턴이 하는 일은 각양각색이다. 소위 콧줄이라 불리는 엘튜브를 코로 깊숙이 넣기, 열이 날 땐 감염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혈액 배양, 산소포화도 체크를 위한 동맥혈 채혈. 폴리 삽입을 통한 소변 배출, 대변보도록 돕는 관장 등등 다양하게 말이다.   

   

 그중 하나가 외래에서 진행하는 학생 검진의 일환인 청력검사다. 그 역시 인턴 업무 중 하나였다.      


 학생들이 몰려오는 때가 되면, 진료실 밖은 소음 그 자체다. 뭐랄까? 테러라도 당한 거 같다고 할까? 수많은 아이의 뜀박질 소리와 함께 온갖 괴성이 섞이다 보면,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해도 머리가 띵 해지는 건 물론이며, 가끔은 정신이 잠깐 저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기분이다. 그 정도면 사실 핵폭탄이란 표현도 아깝진 않다. 하여튼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 진료실 바깥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아이들에게 씩 웃으면서 말한다.     



 “얘들아, 주사 맞을까?”     

 그 말과 동시에 고요함, 아니 적막이 찾아온다. 같이 온 부모님들에겐 내가 최고의 해결사(?)이겠지만, 아이들에겐 내가 테러범이고, 핵폭탄이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들이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일은 하긴 해야 하니깐, 그리고 진짜 주사 주겠다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아마도…….      



 하지만, 나의 귀여운(?) 협박(??)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는 아이들이 매우 수두룩하더라.     


종합 3종 세트     


 학생 검진을 하다 보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집중을 안 해서 두세 번 그 이상의 설명을 하게 만드는 친구, 청력 검사에서 들리는 쪽의 손을 들어야 하는데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아서 들리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아이, 누르지도 않았는데도 오른손, 왼손, 왼손, 오른손 등등 마음대로 움직여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애기들 등 하루에도 수많은 사례를 마주한다.     


 뭐,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어린 나이에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설명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손을 못 들 수도 있으며, 장난치고 싶어서 이 손 저 손 드는 친구들도 당연히 있으리라. 단지, 이 세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 이를 만난다면 이야기가 살짝 다르지만 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의 3종 세트 같다고나 할까?     



 식사로 만나는 3종 세트는 너무나도 좋은 친구들이지만, 일로써 한꺼번에 마주한다면, 감당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것도 정상 상태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면? 3~4시간 계속 앉은 상태로 말만 주구장창 하는데, 숨 돌릴 틈 없이 환자는 들어오고, 화장실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그런 여유 없는 상황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계속 설명하는데도 손 자체를 들지 않다가, 나중에는 이상한 쪽 손들면서 검사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를 이리저리 치이고 있을 때 접한다면, 이해는 하면서도 그와 별개로 멘탈이 무너진다. 정말로 숨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더라.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기절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오죽했으면, 하다 하다 같이 따라온 1살 위의 누나(12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겠는가?     


 “선생님,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진짜 죄송해요…….”     

 걔가 무슨 잘못을 했겠는가? 본의 아니게 사과받으니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지더라.     


하나도 안 들리는데요?     


“선생님 하나도 안 들려요.”     


 검사를 받던 친구가 한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진짜로 단 하나도 안 들릴 수 있지. 그런 걸 확인하라고 청력검사를 진행하는 거 아니겠나? 근데, 10번의 검사에서 10번 다 맞추고 안 들렸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말하는 거와 다르게 잘 맞추는 아이 때문에 당황하는 어머니를 향해 나는 말했다.     


 “어머니, 10번 이상 했는데, 하나도 안 틀리고 찍어서 맞출 확률이 얼마입니까?”     


 참고로 1,024분의 1로, 0.09765625%이다.     

1,024분의 1로, 0.09765625%이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요하게 질문했다.


 결론은 무엇이냐!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소리가 작은 거였다.


친구야, 안 들리는 거랑 들리긴 하나 소리가 작은 거랑은 명확히 다른 거여…….     




 고도의 집중력으로 모든 걸 맞추나 과도한 시간이 걸리는 친구까지 만나다 보면, 어느새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http://brunch.co.kr/@kc2495/75


 어느 때는 정말 진이 다 빠지기도 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고 하던데, 그건 다 뻥인 거 같다. 진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계속 말하려니 혼이 나가면서, 당장 기절하고 싶은 마음뿐이더라.     

 그런 내 앞으로 한 아이가 찾아왔다. 이 아이 역시 학생 검진을 받으러 온 친구! 방금 진료실에서 나간 환자가 독감 접종 환자인지라 관련 처방을 진행하고 기록 남긴다고 정신을 살짝 놨던 와중에, 내 입이 그냥 막 열리면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선생님이 오늘 조금 힘드네……. 한 번 만에 듣기평가 가능하지?”
“너무 말 많이 해서 당 떨어져서 죽을 거 같아……. 힘든 표정이어도 이해해줘.”
“며칠 내내 병원에서 죽치고 사니깐 기절하겠다야”     


그러자 아이가 답했다.     


“병원에서 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의사들은 다 그렇다고 하던데요?”
“저도 일찍 집 가고 싶으니까 청력검사 빨리 끝낼게요.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선생님, 죽지 마세요. 죽지 못해 살아도 살아야죠. 저도 죽고 싶을 때가 있는데, 어쩌겠어요? 학원 가기가 너무 싫지만, 그래도 살아야죠. 그러니깐 선생님도 끝까지 살아 봐요. 쉽게 안 죽을 거예요.”     


 초등학교 4학년 친구가 할 수 있는 멘트가 이 정도 수준이라니…….

 나보다 한 50년은 더 산 사람인 줄 알았네!

 참고로 청력검사를 한 번에 통과해서 정말 고마웠다.    

 



 이런저런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바는 하나다.     

 부모는 위대하다. 정말 대단하다.     


 

 나야 뭐 한번 만나는 걸 여러 번 해서 힘든 거지만,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매일매일 상대하는 부모의 일이란, 쉬운 일이겠는가?     


 허허허. 안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 들으면서 그들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개뿔이었다.     


 부모……. 이거 어떻게 해내는 거냐? 진짜로 이게 해낼 수 있는 일이긴 한 건가?     


 집에 가서, 일단 나라는 놈을 어떻게든 키워낸 부모님과 진지한 대화를 해야겠다.  

   

 “혹시, 오늘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아니, 그냥 좀 미안해서……. 

뭐가 미안하냐고요? 

아니……. 나 때문에 고생한 많이 한 거 같아서요……. 

그러면 용돈 많이 올려달라고요……? 

근데, 그건 좀 곤란할 거 같은데……. 허허허허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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