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늦게나마 너한테 편지를 쓰네.
혹시 기억나? 우리의 첫 만남 말이야. 만나기로 약속한 날로부터 2주나 늦게 봤기에,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널 보자마자 난 직감해버렸다? 너와 사랑에 빠질 거란 사실을. 사랑, 사랑, 사랑이라‥‥. 솔직하게 말해서, 난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분명히 알지. 사랑에 너무 깊게 빠진 나머지, 나의 중심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걸. 너에 대해 너무 많이 바라선 안 된다는 사실 말이야. 그랬다간 실망이 클지도 모르니까. 거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많이 의존하지 말 것. 30대까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야. 이걸 적용한다는 게 또 다른 문제이고, 실제로도 잘 안되더라. 결국 나는 너에게 점점 고대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하는 비율도 자꾸만 커졌지.
난 정말로 행복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왜냐고? 너와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깐. 매일 매일을 함께 했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에 대해 깊게 알아가기 위해선 그만한 기간이 필요한 법인데, 우리는 매 순간을 같이 보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않았을까? 과하면 과했지, 부족하진 않았을 거라고 장담해. 산책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여행할 때도, 다른 사람과 연락하는 때에도, 자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붙어서 지냈잖아.
순식간에 1년이 지났어. 시간 참 빠르더라. 그런데 말이야.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확실히 알겠더라. 달랐어. 처음 만났던 그때의 너와 다르다는 걸 알아버렸어. 사실, 인지하고 있었을지 몰라. 아니, 솔직히 말할게. 알고 있었어. 단지 모른 척하고 싶었을 뿐이야. 아니야, 이건 아닐 거야.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나 혼자만 느끼는 불안함일 뿐이야. 나만의 착각일 게 분명해. 그렇게 여겼지.
그러다 결국 진실과 마주하고 말았어.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선고를. 우리는 여기까지라는 걸. 헤어짐, 이별, 결별, 고별……. 사랑과 반대되는 그 모든 단어를 한순간에 직격으로 맞아버렸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프더라.
윤홍균 작가의 [사랑 수업]에서는 사랑력을 이루는 다섯 가지 힘이 있다고 해. 그 다섯 가지 중 3가지는 참 잘했던 거 같아. 친밀해지고, 때론 거절하며, 대화하기도 하는 등 말이야.
하지만 2가지는 정말 못했어. 그중 하나가 지속력이지. 곁에 있을 때 좀 더 잘하는 그 지속력. 나는 그게 부족했던 거야. 모자랐던 나머지 하나는 사과력이야. 사과하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앞으론 어떻게 조심할 건지 방법을 제시하는 등. 이 세 가지가 합쳐진 사과력을 말해.
늦은 거 알아. 이 말을 한다고 이전의 일들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어. 앞으론 조심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말한다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고. 그래도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어.
모든 게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운동에 너무 빠졌던 탓이야. 다이어트 한다고 9개월 동안 식단관리와 함께 비는 시간마다 운동, 그리고 운동뿐이었지.
너무 많이 한 게 문제였을까?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되니깐 당연히 한 거였는데, 그로 인해 너한테 피해가 갈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정말이야.
내가 흘렸던 수많은 땀이 너에게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어. 땀 때문에 침수 효과가 발생해서, 고장 날 거라곤 더더욱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A/S 센터에서 부르더라. 수리비 20만 원을. 검색해봤어. 그 가격으로 너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살 수 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