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기가 나를 거부합니다.
새벽 5시 출근길에 나섭니다. 아직 잠이 덜 깼습니다. 간신히 눈을 부릅뜨고 6시쯤 회사에 도착하여 안면 인식기에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삐~ 미등록 얼굴입니다." 다시 한번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삐~미등록 얼굴입니다." 안면인식기가 나를 거부합니다. 볼살을 토닥거리고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일정한 거리 유지를 하면서 안면 인식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 출근이 확인되었습니다." 겨우 출근이 인정 되었는데 뒤따라 오던 동료가 한마디 합니다.
"반장님! 살찌면 안면 인식기가 못 알아 보나 봐요? 저도 아침에 잘 안 돼요."
"헤헤 진짜?"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사실 안면 인식기는 눈동자 홍채를 알아보고 인식을 하는 기능입니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출근을 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6시 관문은 겨우겨우 간신히 통과 한 셈입니다.
신입직원들이 들어오면 안면인식기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종종 있습니다.
"반장님, 반장님!!"
누군가 나를 부르면서 달려옵니다
"넘어진다고 했잖아 뛰지 마라 아가양!!" 장난스러운 내 말에 달려오던 사람이 웃으며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오늘 입사하신 분요.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안내해 드리고 먼저 들어왔는데 30분이 다 되도록 안 들어오세요." 화장실 가겠다고 나간 동료가 안 들어온다는 소식이 접수됐습니다.
"좀 기다렸다가 데리고 들어오지 그랬어." 살짝 핀잔을 하지만 고참의 바쁜 맘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기다릴 시간이 없고 얼른 들어와서 챙겨놓을게 많으니 아마도 먼저 들어왔을 것입니다.
"걱정 말아 내가 가 볼게"
이럴 때는 무조건 안면인식이 안돼서 문밖에 서 있는 경우 일 것입니다. 아니면 기다리다 소리 없이 일을 집어치우고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을 터이고요. 둘 중 하나 백발백중입니다. 문을 열고 보니 신입직원이 문 밖에 서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초조한 눈빛에서 다 알 수 있습니다. 자동기계가 다 좋은것은 아닙니다. 실수를 하니까요.
"아무도 지나가지도 않고 전화기도 없어서 부를 수도 없고, 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신입직원의 당황한 변명이 계속됩니다.
"처음이라 당황했지요? 잘하셨어요. 움직이면 더 길을 잃어요." 그리고는 천천히 안면인식기가 왜 인식을 못했는지 점검을 합니다. 기계는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당황했을 신입직원에게 안면인식기가 안 되는 경우를 설명해 줍니다. 노무팀에서 이름과 사진을 잘못 연결했을 경우, 혹은 사진이 제대로 입력이 안되었을 경우, 안경색이 짙어 홍채를 가렸을 경우도 가끔 인식을 못한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재등록과 수정이 가능함을 충분히 설명합니다.
"그래도 처음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기계는 매일 보는 나도 미등록 얼굴이라고 허구한 날 거부를 해요."
신입 직원의 초조했던 마음을 풀어 주려고 농담을 건네 봅니다.
퇴근시간이 되면 안면인식기 앞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정리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질서 의식을 한 방에 알 수 있는 곳이 되지요. 일렬종대로 길게 늘어선 줄을 어느 누구 하나 재촉하지도 않습니다. 묘하게도 퇴근길의 안면 인식기는 또 일을 잘해요. 한 명도 거부하는 사람이 없이 확인을 잘해 줍니다. 백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빠져나가는 시간은 3분 이내입니다. 정말 순서대로 착착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분위기는 모두 즐겁습니다.
"언니~퇴근길 치맥 한잔혀?"
"치맥은 꿈에서나..."
"좋다, 꿈에서도 건배!"
"내일은 더 빠르게 줄 서자. 1초라도 빨리 퇴근하려고."
"1초 아껴서 뭐 할 건데?"
"집에 가서 1초 먼저 누워서 침대랑 합체할 거야."
"그건... 인정."
"적당히 먹고 얼른 자 낼 아침에도 미등록 얼굴입니다. 하지 않게"
정말로 빠르게 노화가 오고 있어서 안면 인식기가 '미등록 얼굴입니다'라고 나를 거부하는 걸까요? 그러거나 저러거나 동료들의 신나는 퇴근 잡담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낼 아침에는 제발 한방에 출근 확인 좀 시켜 주라." 애꿎은 안면인식기에게 속삭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