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야, 이번 명절에는 친정으로 가거라.

친정어머니의 결단

by 파인트리


내 밑으로 남동생이 둘이 있다. 막둥이 남동생이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나니 어머니에게는 며느리가 둘이 되었다. 막내며느리가 시집오던 칠 년 전 그해에 친정어머니께서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친정과 시집이 한 동네인 나는 “엄마 며늘 아가들은 안 왔어?”하고 친정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부산한 손놀림과 함께

" 야야 내가 큰애 이번 명절에 집에 오지 마라고 했다."

"왜 엄마?"

"큰애 어머니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시잖아. 그러니 친정어머니를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게 낫지." 어머니는 음식 준비로 바지런히 움직이시면서

"나는 며느리가 둘 이잖어. 설날에는 추우니까 가까운 곳에 있는 둘째가 오면 되고, 서울 사는 큰애는 따뜻한 추석에 오면 된다. 어떠냐? 내 생각이?"

"와~ 엄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너무 장하시다"

내 칭찬에 엄마는 더욱 으쓱해하시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 며늘 아가들도 명절에 친정 가고 싶을 거 아니냐. 내 딸들이 명절에 오면 이리 좋은데 사돈들도 기다리실 거 아녀."


친정어머니는 팔순이 넘으셨다. 명절이 다가오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큰며느리들의 생각을 듣게 되셨단다. 어머니 자신도 큰며느리여서 그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 던 터라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다고 했다. 친정어머니도 명절마다 수십 번씩 상차림을 하고 치우고를 반복해야 했다. 얼굴도 모르는 친인척들에게 예의와 인사로 하루 종일 허리 펼 날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지켜본 친정어머니의 명절 일상이다. 시댁 그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부엌에서 혼자서 이리저리 부산하셨던 걸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증조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던 대가족이어서 평소 한 끼의 밥상만 해도 다섯 개를 차리는 게 허다했는데 명절이면 오죽했으랴.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며느리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리라 마음먹었고 `친정으로 가라.`고 어머니는 며느리들에게 선포했다.



명절에 친정으로 가라는 어머니의 전화에 큰 며느리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어머님 왜 언짢으셨어요?”

“아녀, 너 정말로 이번 명절에는 친정에 가서 보내고 나한테는 추석에 오그라 잉~"

‘어머니께서 맘 상하신 게 있나? 정말 안 가도 되나?’ 아내의 걱정스러운 반응을 들은 남동생이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머니 정말 뭔 일 있으세요?"

"아녀 뭔 일은, 이번 명절부터 큰애는 추석에 오고 작은애는 설날에 오고 그렇게 하자 잉~"

"너 안 사람 데리고 내려오면 내가 버스표 예약해 두었다가 바로 보낼 것인 게 그리 알고. 괜한 소리가 아녀. 그러니 헛걸음하지 말그라."



두 며느리를 번갈아 친정에 보낸 후로 어머니는 명절마다 행복해하셨다.

설날에는 큰며느리가

"어머니 저 친정어머니랑 여행 다녀왔어요."라고 하면 그렇게 행복하시다고 한다. 추석에는 작은며느리가 "어머니 저는 친정어머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다음에 어머니도 함께 가요."라고 전화를 하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친정의 명절은 다소 단출해도 어머니는 한없이 행복해하신다. 어머니의 그 결정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명절 때 친정에 가면 작고 야윈 어머니의 어깨를 꼭 안아 드린다.

"우리 엄마 멋있어. 우리 엄마 참으로 장해요."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그렇지. 내가 잘했지? 느그들도 절대 시누이 티를 내믄 안 된다." 라며 은근슬쩍 딸들이 시누이 노릇 할까 봐 단도리까지 하신다.

"하여간 며느리 사랑은~" 내 핀잔에도 친정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며

"내 새끼들 내가 아껴야지" 힘주어 말하시며 슬쩍 딸을 향해 미안한 웃음을 흘리신다.



세상 며느리들이 시집살이 싫어서 ‘시’ 자 들어가는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시어머니의 이런 단호한 결정과 태도에 우리 올케들의 생각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며느리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도 시누이라서 올케들에게 물어보지를 못한다. 혹시라도 시어머니 때문에 불편한 거 없는지. 손위 시누이들 때문에 마음 상한 건 없는지 묻기도 조심스럽다. 그냥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그냥 멀리서 예쁘다 기특하다 칭찬만 해 준다. 내 부모님께 잘하고 내 동생에게 잘하고 내 조카들에게 잘하고 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어김없이 올해도 어머니의 행복한 명절이 지나갔다.


KakaoTalk_20220204_214035649.jpg 설날 용돈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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