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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l 09. 2021

딸들아,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출근을 하니 직장의 후배 하나가 표정이 어둡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물으니

”언니 저랑 퇴근하고 술 한 잔 해요. “ 한다.

그러자고 약속을 하고 하루를 보냈다.

퇴근 후에 후배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후배는 결혼을 하지 않은 50대 중반이다. 84세가 되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젊어서 혼자되었고 4남매를 홀로 키웠다. 후배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바위처럼 강하고 검소한 분이었다.  며칠 전이  어머니 생신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생일상을 준비하고 용돈도 두둑이 준비했다고 한다. 생일날은 코로나 시국 인지라 조촐히 어머님 자매들을 모시기로 했단다. 생일 축하를 하러 이모들이 왔다 한다. 이모는  예쁜 포장 상자를 펼치더니 화사한 원피스 한 벌을 꺼냈다. 그리고는

"언니 이번 여름에는 이 원피스 입고 나랑 놀러 가요."라고 했다 한다.



그동안에 치마를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는 어머니였다. 더구나 화사한 원피스라니, 친구는 놀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불안한 눈으로 이모를 쳐다보았단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해서 어머니를 보기가 민망했단다. 하지만 뜻밖에도 원피스를 보신 어머니께서는 크게 감동을 하신 얼굴이었다. 얼른 옷을 입어보시고

"세상에 이렇게 예쁜 원피스는 처음 본다. 나한테 딱 맞춤이야." 하면서 빙글빙글 돌아보는가 싶더니, 요즘 즐겨 듣는 노래를 반주 삼아 춤까지 추더란다. 이모가 채워주는 팔찌도 예쁘다고 이리 보고 저리보고 아이처럼 밝게 웃었다고 한다. 84세이신 어머니께서 원피스를 입고 화사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후배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좋아하는데 왜 우울해? " 하고 내가 물으니 후배는

"그러니까요. 저는 어머니한테 단 한 번도 예쁜 치마  사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 반지 목걸이를 해 줄 생각을 못했어요. 용돈 드리면 되는 줄 알고 항상 돈으로만 드렸어요. 좋은 음식 대접하면 되는 줄 알고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해 보질 않았어요. " 그러면서 눈물이 그렁하다. 후배가 성인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치마 정장 한 벌을 사 드렸다가 호되게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금 목걸이 계를 해서 어머니께 선물드렸더니 며칠 후에 금은방으로 팔러 가셔서 그 이후로는 금붙이 선물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장사하시느라 치마 입고 얌전히 있을 수 없었고, 동생들이 학생이니 돈이 궁해 금 목걸이가 집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원피스 입고 춤추는 어머니를 보고 난 다음부터 어머니를 볼 수가 없어요. 언니 이렇게나 미안하고 이렇게나 안타까운데 어쩌면 좋아요?" 한다.  

  

"그러게." 나도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언젠가 어떤 글에서 봤는데 어머니의 유품 정리를 하던 딸이 쓴 글이었어. 어머니를 기억하고자 해서 유품 하나를 챙겨 두려고 했더니 어느 것 하나 남길 게 없더래. 속옷은 다 닳아서 금방이라도 해질 것 같고 겉옷은 삼사십 년은 되어서 어디에도 못 입고 나갈 것 같았대. 그렇다고 유명한 가방이 있나 패물이 있나. 아무리 뒤져도 남길만한 게 없어서 뒤지고 뒤져보다가 어머니 생전에 즐겨 쓰던 골무 하나를 찾았대. 골무를 손에 끼고 며칠을 울었대. 자식들이 다 먹고살 만했는데 어머니께서 용돈만 좋아하시는 줄 알고 어느 자식 할 것 없이 좋은 옷 한 벌 좋은 신발 한 켤레 선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가시고 난 다음에 후회하는 딸 보다 어머님이 계시는 지금이 더 괜찮아. 늦지 않았어.” 후배는 눈물이 그렁한 채로 조금은 안심이 되어 가는듯했다.  


  며칠 후에 후배가 밝은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언니! 저요 다음 주말에 어머니랑 콘서트 구경 가요.”

“정말? 어떻게?”하고 물으니

그날 집에 가서 어머니께 사죄를 드렸다고 한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게 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엄마 좋아하시는 것 같이 하자고 했다 한다. 이번 달에 뭐가 제일 하시고 싶냐 물으니 이모가 사준 원피스 입고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가시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서 모든 인맥 총동원해서 어렵게 표를 구했단다. 어머니께서는 응원하시려고 문구도 준비하시고 따님과 같이할 커플 팔찌도 준비하면서 여간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 엄마가 즐거워하시니까 나는 기분이 왜 이렇게 좋아요?

원래 이런 기분인 거예요?” 묻는다.

이제 우리가 부모를 돌볼 때가 된 거라서 그래. 부모가 내 자식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나도 있어. 내가 해 준 식사 맛있게 드실 때, 좋은 구경 가서 기뻐하실 때 꼭 내 아이들 어릴 때를 보는 것 같거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질문 하나를 가지고 오게 됐다.

“딸들아 너희들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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