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내려갈 고향 없는 서울에서 딩크족의 설맞이

by 승환

부부가 가급적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지 않고 살기 위해 신경 써야 될 날들이 일 년에 며칠 있다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날들은 명절이다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면 이래저래 부담이 되는 것이 추석과 설날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도 없는 남들이 말하는 딩크족이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지만 부부 둘이 살다 보니 아이라는 부담이 없는 대신 방패막이나 공동으로 타협하게 되는 제3의 지점이 없다

나의 경우는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후 결혼을 하였기에 (어쩌면 늦은 결혼이 혼자 남으신 아버지의 10여 년의 병간호가 끝나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와이프는 시댁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장남이었기에 결혼 초에는 명절 차례와 제사가 부담이었기에 힘들었을 것 같다

시부모는 안 계시지만 시누이와 시동생은 있으니 사람관계여서 부대낌이 없지 않았다

시부모가 없지만 나는 형제애가 좋다고 자부하며 말하였지만 와이프 입장에서는 아마도 각기 가정 간의 구별이 없고 뒤 엉켜 있는 가족관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나 보다

이를테면 노총각으로 늦게 혼자 살다 보니 형제들의 왕래가 편하였고 물려받은 유산의 공동상속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도 얽혀있고 특별하다고 하긴 뭐 하지만 형제간에 대해선 서로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는 편인지라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나도 늦게 결혼을 안 했으니 동생이나 누이의 조카들에게 정을 쏟기도 했고 형제들은 아마도 장남이고 존중은 해주대 영원히 좋은 삼촌으로 남는 것이 원하는 바인 게 내심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관계에서 알력과 신경전은 남자들과는 다르게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되곤 한다

물론 중간에서 중재하는 남편의 역할이 크지만 어쨌든 없이 시는 죄로 작은집에서 다 모이기 힘들고 맞벌이에 시간도 없고 등등 핑계라면 핑계일지 모르지만 오육 년부터 제사를 안 지내기로 형제들에게 동의를 구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주었다

대신 제사비용만큼 힘든 동생네와 제사나 명절 전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은 우리 부담으로 하기로 와이프에게 동의를 구했다

뭐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딜 아니겠는가 기브 앤 테이크이고 서로 윈윈 하는...

그렇게 해서 명절의 갈등이나 스트레스 없이 우리 부부는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장모님이 어디서 점을 보고 오셨는지 간단하게 국과 밥이라도 올려드려야 한다 해서 와이프는 혼자서라도 간단한 제사상을 따로 차리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음식을 준비하는 수고가 힘든 게 아니라 좁은 집에 시댁식구들이 모이고 불편한 시누이와 동서사이의 알력과 신경쓰임이 스트레스였었던것 같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고 내가 좀 더 베풀고 모이고 얼굴 보는 게 큰 문제가 아니구먼 와이프의 마음을 아직도 다 이해는 못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살고 있다

아마 죽을 때도 의문을 품은 채 죽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여자를 다 이해하기란 너무 지난한 일이고 소모적인 일이다

이것은 논리의 문제는 아니고 공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상하고 좋은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어쩜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르겠다

상황판단과 계산이 빠른 나는 훌륭한 연기자가 되는 것으로 편안한 가정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번 설도 편안하게 망원시장 가서 필요한 것들만 일부 장을 보고 나간 김에 밥을 먹고 처갓집에 다녀오고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답답하여 바람 쐴 겸 근교에 카페를 다녀온 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먼 훗날 누군가 한 명이 먼저 먼 곳으로 간다면 둘이 보내는 명절만큼 호젓하지도 못하고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남들과 비교되어 쓸쓸할지도 외로울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둘이 있는 동안은 최대한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람은 외롭고 부부도 외롭다

부산하게 살며 그런 감정조차 잊고 살기도 하지만 서로를 챙기고 생각하는 길이 가장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이고 비법인 거 같다.

부부란 아마도 서로 마음의 거울을 들고 비춰주며 모습을 알려주는 사이이다

서로에게 미소띠며 바라봐야 내 모습의 미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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