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대한 평가나 품평을 한다는 것은 늘 불쾌하고 마뜩치 않은 일이다.
사람의 신체를 경제적가치로 물성으로 비교하여 풀어 놓은 예전 인터넷 기사가 떠오른다
신체의 장기와 비누가 얼마가 나오고 가죽의 쓰임새나 사실 따지고 보면 장기를 제외한 물질적가치는 소한마리 어쩌면 염소한마리 만도 못할지도 모른다.
평가라는 말을 쉽게 쓰임새나 상대적 효용의 비교일수도 있고 정량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재는 상대적 척도일 수도 있어 무엇인가 인성의 특별함과 고귀함을 간과하는 것 같아 표면적으로 대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의 세태는 사람도 어찌보면 존재로서의 귀함이나 절대적인 그리고 신성불가침의 자리를 잃어버렸기에 가치로 특히나 경제적이고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것을 개이치 않고 있다.
평가를 한다는 것은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절대성이나 존재로서만의 귀함을 벗어난 이야기이다.
인내천이니 홍익인간이니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대해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배웠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한푼어치 두푼어치도 줄자를 재듯 비교하여 조금 크고 이익이 되는 그 이익이라는 것의 기준은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지극히 상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기준이 되었고 효용이라는 것을 극대화하여서 요만큼이라도 나은것을 찾아 취하려 할 뿐이다.
그 기준이 다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개별적이고 각각의 개연성을 인정하지 아니 하려고 한다.
기준이라는 것은 보통 경제적인 가치로 치환되어 얼마나 이익이되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런 세태로 세상은 돌아가고 거기에 맟추어 교육을 하고 나의 아이는 얼마나 돈값을 하느냐가 중요한 일이 되었기에 불편한 마음이든 무엇인든 상관없이 시류에 맞게 아이들을 키우려고 부모들은 노력을 한다.
이것은 양육이라고 할 수가 있을지 돼지와 닭을 카우듯 돈으로 결부되는 저급한 생각의 발로이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그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지금의 비혼과 출산율이 바닥을 기는 이유는 어찌보면 잘 크지 못해 돈값을 못하는 영계와 영돈을 폐사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연인들과 부부는 또 어떠한가
나의 연인과 배우자는 다른이들에 비해 얼마나 돈을 벌고 능력이 있으머 인물이 좋은지 다정다감하고 상대에게 잘하는지 연일 비교를 하고 평가를 한다.
결정사에서는 소와 돼지의 등급을 매기듯 결혼을 하려는 남성과 여성에게 수많은 조건과 등급을 나우고 비교를 하고 평가를 한다.
그 기준에 충분히 충족치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음 않될 여분의 가축처럼 주늑들고 자존감이 사라진채로 살아가야한다,
굳이 내가 알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매스컴과 매스미디어 sns에서는 이것을 퍼나르고 당신의 점수를 당신의 연인과 배우자를 평가해보라고 부추킨다.
길거리에는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이 넘쳐나고 집집 방방마다 아이들을 대신하여 입양된 애완견 아니 반려견과 반려묘가 넘쳐나고 있다.
더 귀하고 비싼 품종의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못나더라도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과 식물들은 귀하다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일이고 나쁜모습은 아니다.
그 반려생물들이 내게 주는 행복에 가치를 나를 알아주는것에 그 가치와 귀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왜 키우는 반려동물만도 못하게 나의 아이와 배우자와 연인은 나와의 인연과 소중함을 간과하는 것일까?
부단없이 노력하고 레벨업 레벨업 끝없는 발전과 성장을 하라고 옆집과 뒷집 친구의 연인과 배우자를 아이를 비교하며 노력하고 또 더더 정진하라고 강요한다.
나의 강아지가 시츄여서 옆집의 포메라니안같이 더 귀엽고 귀여운 스타일이 되라고 하지 않는데 왜 우리는 같은 종의 사람끼리 스트레스를 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경제적 능력의 척도가 사람의 존귀가 결정되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며
또 비교당하며 나는 나로서 존중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며
가치의 기준을 구분하고 줄세우기위해 끊임없이 평가를 우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인가 중요한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평가와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근본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낱알보다 쭉정이가 금쪽이되는 일처럼
전말이 전도되는 일이 될 것이다.
경쟁과 평가와 비교와 반성을 통해 발전되고 개선되는 사회와 체제가 된다고 하여도 구성원이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은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상대적이고 일부의 행복이 아닌 보편적이고 개별적이면서도 모두가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이고 가치일 것이다.
모두의 행복과 모두의 선의 모두의 성공은 한가지 아니고 누구도 알려주고 카르쳐줄 수없다.
내가 찾아야되며 다른이를 끌고와 비교하고 평가하는 일은 아니다.
오직 진정한 평가는 스스로 어제와 오늘 내일의 나를 비교하는 일이다.
나에게로 집중하여 인사이트하는 일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