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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잊지 않으려는 마음

by 승환

망각, 잊지 않으려는 마음



초등학교 건물 뒤

머리가 잘린 와우산이 있었다


누워 있던 소의 머리를 베고

그 위에 학교가 올라섰다


머리 잘린 산은 저주를 내렸다

소풍 날마다

비를 내렸다


운동장 담장에 까치발을 들면

멀리 강이 보였다

모래가, 같이 흘렀다


큰 섬이 작은 섬을 삼키고

둥그런 지붕의 큰집은

쓸쓸히 떠 있었다


바람은 강에서 불어왔다

비릿하고, 오래된 슬픔 같았다


학교 뒤 산에는

언제나 무서운 것들이 숨어 있었고


한 아이가 말했다

브래지어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대

귀신이, 처녀를 잡아먹었다는 얘기


그곳에 가려면

당집을 돌아야 했고

숨이 가쁜 108계단을 올라야 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거기서 누굴, 봤다고


학교의 뒷면은

늘 그늘지고, 벼랑 같아서

산의 배꼽만 보였다


절벽에 박힌 작은 나무문은

항상 잠겨 있었고

그 너머 신촌의 골목으로

이어진다고들 했다


그 동굴엔

일본 귀신이, 북한군 귀신이

숨어 있었다고도 했다


다시 간 학교는

더 낮아져 있었다

내 다리는

더 길어져 있었다


숨이 차던 언덕은

이제는 금세 오르는

밋밋한 길이 되었다


수몰된 산골 학교처럼

조금씩 건물 사이로

가라앉고 있었다

기억은

운동장에 동동 떠 있었다


끝없이 넓던 운동장은

한숨에 뛰어넘을 만큼

오그라들었고


모래사장은 체육관이 되었고

철봉은 사라졌고


조개탄을 쌓아두던 창고도

토끼에게 풀을 주던 아카시 나무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교실 뒤 펜스 너머 산비탈의

작은 문도 사라졌다


망각 속에 두어도 좋았을 것들을

나는 자꾸 꺼내 보려 했다


무언가를 지우기 위해

나는 자꾸

그걸 떠올렸다


먼지 낀 기억의 가죽을

닳도록 문질렀다

잊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없애려다, 꺼내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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