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비

by 승환

후드득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니 눈이 떴을 때 빗소리가 들려왔을 것이다. 사위는 온통 조용한데 들리는 유일한 소리라 빗소리는 더 크고 세게 울린다.

여름내 틀고 자던 에어컨을 어제는 끄고 잠들었다. 이불 없이도 잠이 들던 여름은 이제 끝난 듯하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비 피해 뉴스와 영상들이 내게는 트라우마처럼 다가왔다.

비가 많이 오기만 하면 혹시 내가 있는 곳은 어떨지 하는 걱정과 공포가 스쳐간다.

수해를 겪으며 자라왔고 예전 회사의 공장지하에 물이 늘 차 있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며 집을 짓고도 누수가 되었던 기억들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향도 그렇다


몇 해 전에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이 지나고 여기저기 오래된 집의 구석마다 생채기가 드러났다. 옥상의 방수는 해를 걸러 신경을 썼어도 외벽의 상처들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긴 장마가 지나면서 비가 새어 들어왔다. 안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갈라진 상처들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투명한 핏물처럼 베어 들었다.

집들은 겉으로 태연한 척 하지만 아프면 안으로 안으로만 피를 흘리고 앓고 있었다.

자칭 전문가라는 업자들이 와서 제 각각 처방전을 내리고 돈을 받아갔다. 로프를 타고 공수부대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며 실리콘을 쏘는 업자도 있었고 벽에 앵커를 박고 주사위를 꽂아 놓고 이태리에서 배워온 특수공법이라고 떠벌리던 업자도 있었다.

맑고 바람 없는 좋은 날을 택해 작업을 하고 나면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가 다음 해 장마가 시작되면 여지없이 메꿔지지 않은 상처에서 출혈이 되었다.

건물의 외장을 현무암과 벽돌을 사용한 원죄라 이거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신반의하기만 하였다.

조금 큰돈이 들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징크로 덮는 것이라 생각하고 옥상일부와 옥탑을 징크로 덮어서 아래로 넉넉히 4층까지 덮었다.

확실히 누수는 잡았지만 소나기나 폭우가 내릴 때면 집안에서 요란한 빗줄기의 타악 연주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제법 운치가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살고 있다. 일생을 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나를 치유하려는 하늘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장마는 장마 같지 않게 오고 비는 맑다가도 급작스럽게 집중호우로 내린다.

비가 내리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해진다. 오직 비가 내리고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흡사 조용한 바닷가의 파도소리 같았고 계곡 옆에 서서 들려오는 떨어지는 물소리처럼 오직 들리는 것은 물이 떨어지고 부딪치는 소리가 된다.

쏟아지는 빗소리는 어느 음악보다 강렬하고 폭발적이다. 헤비메탈의 드럼같이 두들기고 몰아치는 일렉기타처럼 일순 사람의 목소리마저 삼키고 오로지 자신의 소리로 세상을 뒤덮는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은 채 누워있다. 깨어났지만 일어나지 않고 서서히 정신이 모아지기를 기다리며 멍한 상태를 즐긴다.

여름이 지나갔을까? 가을이면서 여름 같기도 한 이상한 계절을 나는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붙이고 숫자로 나누어 계절을 구분하고 나누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싶기도 했다. 작년도 그랬고 올해도 10월에도 한낮에는 여름의 입김이 불어올 것이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계절이 바뀌어 가기는 한다. 아무리 그래도 여름이라 부를만한 날씨는 사라질 것이고 맺혀야 할 열매는 열릴 것이고 초록들은 색이 바래지고 떨어질 것들이다.


살면서 바뀌지 않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계절이 바뀌어 갈 즈음 기시감이 들고 나는 한번 정도 거울을 바라보기도 한다. 희끝해지고 쳐지고 톤다운되어 가는 피부며 결코 아름답지 않은 얼굴을 본다.

어린 나와 젊은 나와 작년의 나와 어제의 나는 어디가 얼마큼 바뀌고 변해오고 있는 건지.

사람도 나무와 같은 걸까.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일은, 겨울을 앞둔 나무처럼 잎과 열매가 떨어지듯, 내 주변의 소중했던 사람과 물건이 멀어지고 잊혀지는 일은 아닐까.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잘한 것보다 실패한 것들 투성이이다. 무엇을 하고자 하고 무엇이 되고자 하던 것들이 다 실패하였지만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다. 소중했던 것이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소중히 생각했던 것들 뿐이고 바람이 불면 훅 하고 꺼져버리는 미망들이었다.

안으로만 파고들어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며 또 사람이니 관계니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연들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본다.


혼자여도 아니 혼자여야 되고 더 홀로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불안하고 흔들린다.

마음은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무엇인가 차오른다. 그것이 욕망인지 꿈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는 그냥 무엇도 아닌 나 하나로 충만하고 싶다.

비가 그치면 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고 싶다.

모호하고 흐릿한 것은 내가 아니라 계절일지 모른다. 그것들은 지나치는 바람이고 빗줄기 일 것이다.

여름과 가을의 사이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또 다른 계절이 떠돌고 있다.






https://youtu.be/VnNxapRIsm0?si=CZ2I2GkpvuScJcfz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희랍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