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하여, 나는 일보 후퇴하기로 했다.
요 며칠 간, 참으로 몸이 아팠다. 치고 나가야 할 때이건만, 치고 나가기도 전에 지쳐 나가 떨어질 뻔했다. 유튜브는 이제 구독자 200명을 눈 앞에 두고 있고, 회사도 나름 잘 다니고 있고, 난제를 매일 잘 풀어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 아이맥도 사고 소니 액션캠도 사고 진격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몸 한 쪽 전체가 저려올 정도로 아픈 끝에, 내가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휘말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만인지상의 자리에 빨리 올라야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다”는 에고, 자의식이 가득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01. 내 꿈들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꿈들이, 현실에서 다 깨지고 있었다. 회사와 조직에서 초반부터 인정받는 직원이라는 내 고유 초식이 깨지는 것은 뭐, 어쩔 수 없다. 회사와 조직마다 지향점이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꿈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집안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파워블로거 때, 창업할 때 뭐라고 안 하셨던 어머니와 친척 분들이 ”야, 네가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잠깐 네 꿈 좀 내려놓고 5년만 회사에 다녀봐라”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머니도 은퇴할 때가 되었고, 일가 친척 분들도 나중에 내가 사업을 할 때를 대비해, 5년만 조직 생활에 몸 담으면서 중간 관리자까지는 마치고 퇴사하라고 하셨다.
특히 어머니가 더 강하게 말씀하셨다. 살빼고 연애하고 결혼까지 다 한 후에, 회사를 관두라고. 네가 백수라면 그 어떤 여자가 너를 좋아서 사귀겠냐고 하시면서.
얼마 전에는 리파모 사람들에게 수비학적으로 인생 대주기 점을 봐 줬다. 리파모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스승이 될 거라는 점괘가 나왔던 반면, 나는 내 가문과 나 자신을 높은 자리에 올릴 수는 있어도, 사회의 스승이 될 수 없는 점괘가 나왔다. 내 수비점은 적중률 88%이니.... 어휴. 그러니까 리파모 사람들은 죽어서도 최고의 책사로 존경받는 제갈량 급으로 성장할 수 있어도, 나는 자기 가문을 황제 가문으로 바꾼 초석 역할만 했던 사마의가 내 인생의 끝이라 이 소리인 것이다. 가문은 사마의처럼 일으킬지언정, 제갈량과 같은 사회적 스승이 되는 사주가 없다는 뜻이다.
만인지상의 자리를 꿈꿔왔건만, 내가 원하는 삶을 꿈꿔 왔건만...... 이렇게 깨지니까 사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다른 2030 청년들이 유튜버다, 작가다 이러면서 자기 목소리 내고 자기 장점 뽐내기도 바쁜 시점에, 나는 언제까지 존재감 없이, 말단 생활을 하며 숨 죽이고 있어야 하는가......
답답한 마음에, 내가 모델링을 하는 대상 중 하나인 사마의에 관련된 자료를 보니, 하나같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젊어서 자기를 뽐내는 것은 누구나 다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노년까지 끌고 가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퇴위진, 지금 물러남으로써 전진할 기회를 엿본 후 전진한다.”
“지금 네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괜하게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을 바라지 말고.”
“세상은 돌고 돈다. 순욱, 곽가, 정욱, 가후 같은 참모들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너에게도 기회는 온다.”
참 억장이 무너졌지만, 참으로 옳은 말인지라, 내가 어떻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분노를 감출 길도 없었나 보다. 폭식을 하고, 괜하게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빨리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나를 달달 볶았다. 심지어, 나에게는 왜 대도서관이나 킴닥스와 같은 사주가 없는지, 내 아버지는 왜 내 인생 초반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서 속 시원하신지..... 그렇게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넣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 이번에도 일을 그르칠 것인가? 아니면 감정을 공부해서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가? 나는 이 시점에서 후자를 전격적으로 선택했다.
2. 김혜나의 몰락, 사마의의 성공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하나는 JTBC의 [스카이캐슬], 다른 하나는 중국 드라마 [사마의: 미완의 책사], [사마의: 최후의 승자]가 그것이다. 드라마에서 김혜나와 사마의는 참 많이 닮았다. 주변이 하나같이 다 경계 대상인 것들(김혜나는 한국 사회, 사마의는 조위정권 수뇌부들이 경계 대상) 투성이였고, 속을 알 수 없었으며, 상황 판단력이 너무나 좋아서 적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재주 등등, 둘은 너무나 잘 닮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김혜나는 감정을 통제할 줄 몰랐으나, 사마의는 어려서부터 감정을 통제할 줄 알았다. 강예서의 놀림과, 시험지 유출 때 감정적으로 대했던 김혜나는 제대로 된 복수를 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사마의는 철저하게 자기 감정까지 통제했고, 자기를 경계했던 조위 정권의 수뇌부를 박살내버리고, 삼국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김혜나의 몰락과 사마의의 성공을 본 나로서는, 당연히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를 선택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감정을 공부하고, 동시에 내 전선을 최소화시키기로 결심했다. 감정을 공부하며, 나를 마주한다면 내가 어떤 때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 자각하고, 대처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선을 축소시킨다면 내가 늦게 출세하겠지만, 적어도 내 적들을 줄이며 리스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전선 축소의 일환으로, 나는 우주인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우주인까지 수행하기에는 내 몸이 감당하지 못한다. 회사원, 블로거, 유튜버, 브런치 작가로도 내 몸이 견디질 못하는데 여기에 우주인까지 하는 것은 전선 확대를 넘어서 내가 자멸할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업무량이 늘어난다면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까. 감정 공부를 하지도 못하고, 업무에 치여 김혜나와 같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란 생각이 들었다.
03. 이퇴위진, 욕속부달
이쯤 되니, 사마의의 초식을 다시 한 번 떠올리기로 결심했다. 어쨌건 회사 입사는 내 선택이다. 유튜버는 내 선택이다. 회사에 다니며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하겠다 다짐한 것은 내 선택이다. 내 사주가 사마의까지 허용한다면 일단 거기에 따라야 한다. 결국 나는 우주인을 그만두는 것으로, 당장 진격을 외치는 게 아니라 감정 공부를 하며 나를 추스르는 후퇴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퇴위진, 퇴각하며 나아갈 길을 찾고 나아가기로 했다.
마음이 편치는 않다. 당장에라도 아버지 납골당에 가서 “자식이 다른 2030 애들이 치고 나갈 동안, 존재감 없이 살게 만들어서 속 시원하신지요?”라고 따지고 싶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운명이 사마의와 같다면, 그 또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니. 그리고 이때까지 10년간 진격하는 법만 배워왔다면, 후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병법에서도 그랬잖은가. 이기는 것만큼, 잘 후퇴하는 것도 최적의 전략이라고.
마음이 쓰라리고, 내 꿈이 좌절된 것 같아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이퇴위진을 떠올리며, 진짜 대대적으로 진격할 때를 준비하기 위해 후방부터 다지고 봐야 하는 것을. 지금 후퇴했다면, 언젠가 다시 진격할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