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새로운 것을 접하기 딱 좋은 때
후아. 요즘 들어 한 기업에서 마케터로 있기가 힘들어짐을 깨닫고 있다. 일이 힘들었다면, 적성에 안 맞았다면이라는 이유는 아니었다. 6년간 글을 쓰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리고 뭔가, 나의 크리에이티브 감이 떨어졌음이 느껴졌다. 에고. 업계에서는 마케터에게 “크리에이터 + 편집자 + 작가 + PD + 영상 제작자”의 역량을 요구한다. 한 사람이 저걸 다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요즘은 크리에이터들이 치고 올라오는 추세다. 대기업이나 일반 기업에서도 블로거 20명 이상에게 일방적으로 뿌리는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 대도서관, 윰댕, 킴닥스, 밴쯔, 소프 등 영향력 쩌는 소수의 크리에이터와 협업하는 구조로 간다. 그게 더 효과적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 크리에이티브 감까지 떨어지는 추세라면, 뭔가 나를 점검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01. 자기 계발서로 커왔던 지난 6년, 이제 그 6년은 다한 듯.
자기 계발서가 나쁘단 뜻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지난 6년은 내가 무명에서 조연까지 오는 동안, 자기 계발서로 큰 것이 맞으니까. 꿈 없이 막연함만 좇던 24살 청년에게 자기 계발서는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줬다. 방법을 줬다. 나는 그 방법대로 살았다. 블로그를 키웠고, 독서모임을 나갔고, 대기업 대외활동을 했다. 취업 또한 비정규직 -> 소기업 정규직 ->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점점 나를 발전시키며 했다. 와. 무명이 조연까지 성장했으면 잘한 거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패스트 팔로워들의 전략이다. 패스트 팔로워는 “모방형 추격자”를 의미한다. 일인자의 방법을 따라 일인자를 따라잡는 걸 뜻한다. 나는 그 방법으로 내 성장 속도를 빠르게 했다. 2017년에는 이달의 블로거에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자기 계발서에 나온 디지털 노매드의 인생을 살았다. 지금은 직장인이 되었다. 또, 내 개인 퍼스널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회사 업무에서도 “우리만의 것을 창조하자”는 피드백을 더 받았다. 내 글에서도 고인 물 티가 팍팍 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안의 것을 꺼내도 되는데, 글에서는 계속 패스트 팔로워의 느낌이 나니까 내가 과거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제 자기 계발서를 통한 패스트 팔로워 전략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으로.
02. 일단 쉬었다.
내 안의 위험을 인지한 후, 나는 곧장 나를 바꾸지 않았다. 지난 6년간 1등을 따라잡기 위해 달려왔던 나에게 휴식부터 줬다. 온천 휴식을 통해 몸에 있는 나쁜 기운을 빼면서, 새로운 좋은 영감과 기운이 올 자리를 만들어줬다. 나만의 휴식처인 서울 강남 황금 온천에서 5시간 정도,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땀 빼는 일에만 열중했다. 따뜻한 온천물에 내 몸을 맡겼다. 스르륵 잠이 들며, 몸 안에 쌓인 먼지들이 씻겨 내려갔다. 수습 2개월 차가 끝나면, 호캉스를 다녀와서 더 빼야겠다. 비우면 비울수록, 새롭고 좋은 것이 들어올 공간이 커지니까.
03.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내 작업대를 채웠다.
내 안의 먼지를 뺀 후, 나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 컷 프로였다. 나는 프리미어 프로를 주로 썼다. 하지만 노트북이 게임 + 영상 녹화 + 편집 이 3개를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해, 영상 편집 및 소셜 관리용으로 아이맥을 사게 됐다. 파이널 컷 프로는 맥북 / 아이맥에서만 작동되는 영상 편집 툴이다.
오늘 유튜브에 널린 파이널 컷 프로 영상 강의를 보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쓰는 툴이어서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난번에 아이패드 프로로 영상을 편집해본 결과, 애플 계열이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완전 최적이었던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불편하지만, 점점 쓰면서 새로운 트랜지션도 써보고, 좀 더 멋진 영상을 파이널 컷 프로로 해본다면, 나름 좋지 않을까?
둘째, 나의 발전 기본 베이스를 자기 계발서에서 고전 인문 도서로 바꾸었다. 그간 자기 계발서로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써서 무명에서 조연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내가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1등을 똑같이 따라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등, 그러니까 현재 주연으로서 주목받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자신을 빛내는 지점을 발견”하고 그대로 간 사람들이다.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주연이 되려면, 나의 철학을 가꾸고 그대로 밀고 가야 한다. 이 생각에, 올해는 내 기본 베이스를 자기 계발서에서 사마의, 제갈량을 기점으로 하여 고전 인문 도서로 교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국가와 개인의 처세 및 시스템 정립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법가의 시조, 한비자의 책인 <한비자>였다.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 3개 채널을 운영하며 퍼스널 브랜딩을 만들어 갈 나에게, 업무 및 철학 시스템 정립은 가장 필요한 기본 요건이다. 나는 이 생각을 갖고 <한비자>를 읽어 나가고 있다.
읽어 내려가면서, 나라는 사람의 균형을 잡기가 참 힘들구나를 깨닫고 있다. 동시에 타인을 설득하는 방법도 배워가고 있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스킬을 배웠다면, 고전 인문 도서에서는 기본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 번째는 안 읽어 본 장르의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간 성과, 성공, 성장에 치우쳐진 나로서는 비교 분석하는 글은 잘 쓴다. 평이한 글은 잘 쓴다. 하지만 뭔가 꾸미는 것에 되게 어색하고, 제품이나 사람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내는 일에는 약하다. 그래서 내가 요즘 크리에이티브한 감이 떨어지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어, 읽어 보지 않은 사랑 에세이, 일러스트가 매력적인 책들을 읽게 되나 보다.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가 그 첫 시작이었는데, 느낌이 좋다. 설렘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동시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이 책 리뷰 가지고 뭔가, 내가 바라는 연애의 모습에 대해서 가감 없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래서...... 사람이 뭔가 감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볼 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나타나는 것인가?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걸, 내 작업대 위에 뒀다. 평상시 같았으면 연구 자료 올려놔야 한다고 거추장스럽다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냥 두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책상 위에 두면, 일하다가 잠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내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내가 올려둔 것은 페이트 아포크리파의 잔 다르크 피규어이다.
<페이트 엑스텔라>, <페이트 엑스텔라 링크>, <페이트 그랜드 오더> 게임으로 만난 잔 다르크는 너무 예뻤다. 갑주도 그렇고, 모델링이 너무 세련된 캐릭터였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내 책상 위에 페이트 잔 다르크 피규어를 둬 보고 싶었다. 이제 두니까 좋다. 일하다가 지칠 때,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결. 물갈이를 할 때가 왔네요.
크리에이티브 감이 떨어졌다고 느낀 후, 새로운 것들을 해보니 사람에게는 주기적으로 “물갈이”를 해줄 시기가 있음을 배웠다. 과거 꿈 없던 사람이 자기 계발서로 물갈이를 했었다면, 지금은 자기 계발서에서 고전 인문 도서와 새로운 경험으로 크리에이티브를 넓혀 줄 새로운 물갈이가 필요한 것이다. 물갈이가 필요했기에, 올해 내게 주어진 것이 후퇴와 재정비가 아니었을까. 그간 성과, 성장, 성공만 바라보고 움직였다면, 이제는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개성을 만들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 물갈이를 해주겠다. 아주 좋게,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