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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Sep 19. 2021

죽부인과 나홀로 집에

#죽부인


  초등학생 시절,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죽부인이 너무 탐났다. 여름에 기다란 대나무 덩어리를 안고 자면 너무나 시원할 것 같았다. 대나무의 푸름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랑 아빠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랑 아빠는 박장대소를 했다. 곁에 있던 누나도 박장대소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왜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는지 몰랐다. 의아했다.


  그래도 사달라고 졸랐다. 아빠랑 나는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대나무로 만든 많은 공예작품들이 있는 가게에 갔다. 거기서 내 키만한 죽부인을 샀다. 나는 기뻤다.


  그날 밤, 교과서에 봤듯이 껴안고 잤다. 시원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까칠까칠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냥 죽부인에 등을 대고 자거나 발 거치대로 쓰며 잤다.


  엄마 아빠 누나가 박장대소를 한 이유는 몇 년 뒤에 가서야 이해했다. '죽부인'은 '죽+부인'이었다. 보통 총각들이 대나무 부인을 끌어안고 자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대나무 부인을 끌어안고 자는 걸 보며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폭소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죽부인에 대한 설명 중 다음과 같은 설명이 수록되어있다.


"무더운 여름철 잠자리가 불편하면 사랑방에 기거하는 선비는 죽부인을 활용하게 된다. 삼베의 홑이불을 씌워서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한 다리를 척 걸치고 자면 허전함을 덜 뿐만 아니라 솔솔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에 저절로 숙면하게 된다. 잠들게 하는 수면제가 없었던 시절의 병자에게는 좋은 치료의 도구가 되었다. 죽부인은 아들이 아버지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http://naver.me/G7KsAoM1)


  여기서 의아한 점 몇 개가 있다.

  1. '허전함을 던다'가 무슨 의미인지

  2. '죽부인은 아들이 아버지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의'는 또 뭔지

  3. 조선시대 여성들은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어찌되었든 보통 총각이 쓰던 죽부인을 나는 초등학생 때 사용해보았다. 지금 '죽+부인'은 내 방의 인테리어가 되었다.



#나홀로집에


  초등학생 시절, 나는 크리스마스 특선으로 TV에서 방송하는 영화 '나홀로 집에'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밌었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친구가 도둑에게 장난을 치지 않나, 도둑들이 발로 압정을 밟게 만들지 않나 등 충격적이면서 재밌었다. 미국 친구는 다른 스케일의 사람이구나 싶었다.


  엄마와 누나는 내가 이렇게 TV에서 크리스마스 특선으로 나홀로 집에 1, 2, 3을 홀린듯이 보고 있는 모습에 박장대소 했다. 나의 모습에 귀여워하며 엄마는 피자를 시켰고 누나랑 나는 오물오물 먹었다. 초등학생이던 당시의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왜 놀리는거지?' 생각들었다.


  이 이유도 몇 년 뒤에 알았다. 당시에는 '나홀로 집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홀로'라는 낱말을 배우고 나서야 '나 + 홀로 + 집에'였음을 깨달았다. 크리스마스 때 엄마는 직장, 누나는 친구들이랑 놀러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보니 초등학생 아들(동생)이 '나+홀로+집에' 영화를 뚫어져라 보는 모습에 박장대소 했던 것임을 파악했다.



#2021년 현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 처음으로 전체 가구 수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30%를 넘어선 31.7%를 기록했다. 데이터를 보면 1인 가구의 수 및 1인 가구의 비중은 해를 거듭할 수록 고공행진하고 있다.


  1인 가구를 형성한 사람들은 다양한 사연을 싣고 혼자 살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대학생으로서 대학교 주변에 자취방을 잡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본가 주변에 일자리가 없어서 광역시 혹은 서울로 상경하여 1인 가구를 형성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발령받은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1인 가구를 형성하고 있을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나+홀로+집에'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비혼주의의 증가, 개인주의 의식의 증가로 줄어들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다들 잘 지내면 모르겠는데, 보통 주변 이웃 및 공동체와 단절되어 살고 있고, 종종 청년 고독사 문제도 뉴스에 종종 언급된다.


  '나+홀로+집에'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게 '죽+부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소모임 어플을 통해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 친구들도 만들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며 같은 취미의 사람들을 사귀기도 한다. 나같은 대학생들은 동아리를 통해 친구들을 만들리도 하고, 대외활동을 통해 친구들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 직장에 지친 직장인에게 적절한 죽+부인을 찾는 것은 요원해보이기도 한다.


  '죽+부인'과 '나+홀로+집에'.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던 약 17년 전 2004년에 이 개념들은 이씨 댁에서 웃음을 꽃피우던 주제였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21년, 옛날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현재 나의 상황도 그렇고 내 주변의 상황도 그렇고 웃음보다는 풍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모두들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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