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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Jan 07. 2021

평화누리길 5일 차

잃어버린 옛 나라를 그리워하던 고려 왕족들의 설움과 아픔이 스며있는 곳 임진강변 아미산 자락에서 정상을 조금 못 미쳐 아늑한 평지에 자리 잡은 숭의전지는 고려시대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다. 이곳에서는 북동에서 남서로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곳을 지나는 코스를 오늘 지난다.


이제 파주를 지나 연천으로 들어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만큼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빠른 지하철인 KTX가 아닌 지하철과 시내버스로 이동하면서 환승을 하여야 하고 경기 북부지역은 경기남부지역이나 서울보다 인구가 적어서 시내버스 노선도 그렇게 풍부하지 않아서 시작시간도 9시가 넘어야 된다. 그리고 종료시간도 그것에 맞추어야 한다.


평화누리길이 경기도 김포, 고양, 파주, 연천으로 이어지는 만큼 이제 연천으로 들어가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연천은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번에 코스를 종료하지 못하여 오늘은 시작 지점이 지난번 종료한 지점부터 출발이다. 9코스 중간지점에서 시작하여 10코스 끝까지 가기로 하였다.

기본적으로 장파 사거리를 출발하여 황포돛배 나루터로 갔다가 파주시와 연천군의 경계인 장남교를 지난다.

장파 사거리에서 자장리를 지나고 갑자기 임진강 바로 앞에 간다. 그곳이 황포돛배 나루터였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DMZ관광안내 홈페이지에서 황포돛배에 대하여 널찍한 노란색 돛을 펼치고 바람을 따라 임진강을 유유히 지나가는 황포돛배이며. 조선시대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 두지리에서 자장리까지 약 45분간 임진강 적벽의 절경을 감상해볼 수 있다고 한다. 파주 황포돛배는 조선시대 당시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되살려낸 것으로 여행객들에게 즐거운 시간여행을 선사하고 있다고 한다. 황포돛배 위에 몸을 실으면 두지 선착장을 출발해 원당리 적벽, 호로고루성, 고랑포 여울목 등 수십 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임진강의 아름다운 경치 속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겨울이라 황포돛배는 강에 있지 않고 강둑에 올라와 있다.


연천으로 넘어가는 장남교를 지나면서 10코스가 시작되었다. 10코스도 16km이다.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연천을 갈 때 대부분은 임진강 남쪽에 있지만, 북쪽으로 넘어가서 길을 걷는 길이다. 태풍전망대도 어떻게 보면 임진강 동쪽인 만큼 강을 넘어가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넘어간다. 강을 넘으면서 임진강을 담아본다. 어느 강이나 똑같다.

연천군 장남면은 5 개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3 개리는 주민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동쪽은 백학면(), 북쪽과 서쪽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개성시 장풍군, 남쪽은 임진강 건너 파주시 적성면()과 접한다.


1962년 '수복지구 임시조치법'에 의거 연천군 백학면 원당(元堂) 출장소를 개설하고, 1989년 4월 면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지역이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으로 취락은 원당리에 주로 결집되어 있다고 한다.


장남면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무덤이 있다. 경순왕릉이  경주가 아니라 연천에 있는 것은 고려 조정이 의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원래는 식읍지인 경순왕이 사망하고 경주에 묻히려고 이송 중에 있었으나 경순왕의 시신이 연천  도착했을 때 고려조정에서는 논란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경순왕의 장례를 경주에서 치르면 신라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유발할 것으로 생각하여 운구행렬을 정지시고 '왕릉은 수도 개경에서 100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이유로 경주까지 못 가게 막았다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동 왕릉으로 처리하여 100리라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능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조선 영조 때 지석이 발견되어 새로이 무덤을 쌓았고, 6.25 전쟁  후 수십 년 간 돌보는 이가 없어 소실될 위기에 처했으나 1970년대에 한 병사가 잡목 숲 속에 쓰러져 있는 묘비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미천 인근을 지난다.  임진강변을 끼고 캠핑장 등이 곳곳에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사미천 캠핑장은 임진강과 사미천(샛강)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아담한 사이즈의 캠핑장이다. 봄철 자연의 싱그러움과 가을철 단풍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여름철 임진강의 시원함을 즐기기도 좋다. 사미천 캠핑장의 옛 명칭은 연천 장남 샛강 캠핑장이다. 사미천 캠핑장은 약 20여 개의 사이트를 펼칠 수 있고 친절함과 소박한 농촌의 정겨움을 즐기기 좋다. 마치 고향집 할머니 집 마당에서 캠핑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조용한 산기슭에 위치하며 한적하다고 소개되어 있다.


사미천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는데 이것을 지나치면 5km를 정도를 우회하여야 한다. 사미천을 따라 걸어서 올라갔다가 다리를 건너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여름에는 특히 물이 많아서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어 다리로 가야 한다. 혹, 이곳에 연천군에서 임시가교를 설치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은데 돈이 들지 않는 징검다리를 놓아두었다. 하지만, 이것도 운치가 있다고 한다.


사미천도 국제하천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장단군 자라봉에서 발원하여 연천군 백학면 두현리에서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길이 54㎞, 유역 넓이 413.5㎢. 사미천 유역의 기반암은 역암·천매암·점판암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상류의 북한지역만 산지 하천이고 전반적으로 평지 하천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산림이 울창한 마식령산맥의 골짜기에서 발원한 여러 개의 지류가 유역을 구성하므로 가뭄에도 수원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학곡리() 돌마 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자연 제방 위의 모래 언덕에 있는 돌무지무덤이다. 모래 언덕은 남쪽에 접해 있는 임진강의 방향을 따라 가늘고 긴 형태인데, 길이가 약 30m, 폭은 최대 17.5m 정도이고 남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좁아지는 모양이다.


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이것은 연천 학곡리 적석총이라고 한다. 모래 언덕 위에 한 변의 길이가 20~40cm 정도 되는 강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은 길이 24.5m, 폭 4~8m, 최대 높이 1.4m 정도이며 동쪽이 높고 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형태로 이 일대에서는 연질토기 조각, 민무늬토기 조각과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판단되는 박편(剝片) 석기, 돌칼 모양의 석기,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 등 다량의 유물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고인돌도 담아 보았다.

백학면을 지나면서 우리는 논에 녹색이 지속적으로 있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이것이 무엇일까 궁금하였는데 그것이 잔디였다. 연천 잔디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연천 잔디는 크기와 색깔이 섬세하고 균일하며 밀도가 높다. 마을에 펼쳐져 있는 너른 잔디 농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화를 주기에 최적이다. 짙은 초록이 넓게 조성되어 있어 관상 가치가 높고, 먼지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며, 맑은 공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잔디 농장은 쾌적한 자연환경을 유지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 농장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룬다. 도심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사람은 38선 마을의 잔디 농장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를 권한다.

처음에는 이곳에 잔디가 그렇게 유명한지 몰라서 들판이 녹색이어서 겨울에 이렇게 파란 곳이 있을 수가 있나 했는데 그것이 잔디 농원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의 왕족들이 태조 왕건의 신위를 보호하고자 돌배를 만들어 실어 보냈는데, 돌배가 이곳에 머물며 하룻밤 사이에 쇠닻 줄이 썩어서 없어졌기에 절벽 위에 사당을 세우고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셨다고 한다.  

숭의전은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터에 창건되었고 정종(定宗) 원년(1399년)에는 고려 태조 외에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의 7 왕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후 제5대 문종 때에 숭의전(崇義殿)이라 이름 짓고, 조선의 종묘에 5 왕을 모시는데 고려조 묘전에 8 왕을 모시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다 하여 태조를 비롯하여 4 왕만 모시게 되었다. 이때 고려 16 공신에 대한 제향도 지내도록 하였다. 초기 건물은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하여 전소되었고, 1972년부터 1973년까지 현재의 규모로 복원 건립되었으며, 1971년 12월 28일에는 국가 사적 제223호로 지정되었다고 자료에 있다.


그래도 망국의 고려를 위하여 조선은 무엇인가를 한 것 같다. 조선의 태조도 고려의 신하였기에 고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 것 같다.

임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멀리 누에 봉이 어떻게 보면 누에의 형상을 그대로다. 이곳과 관련된 썩은 소의 전설이 표지석에 있어 옮겨본다.


여기서 당포성까지 걸어서 10코스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삼화리까지 걸었다. 대중교통으로만 이동을 하기 위하여 추가적으로 2km 정도를 더 걸었다. 누구는 이곳에 택시를 부르면 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아 시간을 많이 허비하였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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