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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Aug 29. 2023

천태산 그리고 암벽

근무지 근처에 있는 산을 오늘도 찾는다.

예전에 한 번 가본 기억이 있는데, 20년 전에 가본 기억이 있는 산인데 바위를 탄 기억이 있을 뿐이고 다른 기억은 그 산을 내려오면 큰 은행나무가 있다는 기억도 있고 그 산을 내려와서 편안하게 사찰로 접근을 하여서 하산을 한 기억이 있다. 산에 대한 기억이 참 멀다.


그 산을 가기 위하여 사전 조사를 해보니 사찰의 주차장이 있고 사찰의 주차장에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산을 오를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시계반대방향으로 오르는 것을 권고하고 있어 오늘도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을 할 수 있고, 산의 주소지는 충북영동과 충남 금산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접근하는 것은 옥천 IC다. 옥천은 대전인근에 있어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향수의 작가인 정지용선생의 고향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그곳이 옥천이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에 가면 실개천이 있다. 그 실개천이 휘돌아 나간다. 옥천읍을 지나 영동과 금산의 경계에 있는 천태산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사 주차장으로 이동을 한다. 영동군에서 천태산을 진입하는 것은 두 길이다.  명덕리 마을회관 쪽에서 진입하여 영국사 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고, 누교 진료소 쪽에서 진입하여 영국사로 바로 갈 수 없고 천태산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 옥천읍내에서 올 경우 명덕리 마을회관 쪽에서 보면 영국사라는 이정표가 보여서 바로 들어가면 되는 길이고 one-way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맞은편에서 자동차가 오면 좀 비켜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산을 넘어가야 한다. 누교진료소 쪽으로는 버스도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주차를 한 후 2-30분 올라와야 영국사 주차장을 맞는다.

우리는 명덕리 마을회관 쪽으로 진입을 하였다. 20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누교진료소 쪽에서 진입을 하였는데 그 길이 아니지만 굽이굽이 길이 들어간다. 산을 넘고 영국사 주차장에 들어간다. 우리가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도착한 자동차도 있고 바로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도 있었다. 모두 내려서 산으로 들어간다. 영국사로 가는 사람들은 연결되어 사찰아래의 주차장으로 간다. 천태산의 암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을 벗어나면 오른쪽과 왼쪽으로 길이 있다. 왼쪽은 영국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우리가 온 길이며 그곳에 바로 천태산 들머리가 있다. 천태산은 그렇게 큰 산은 아니지만 암릉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그곳에 '나를 살려주세요'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이곳이 그렇게 큰 산도 아닌데 쓰레기를 버릴 정도 많은 시간도 없는데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암릉을 만난다. 처음은 그저 그런 암릉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암릉의 규모가 켜진다. 거의 직벽인 암릉을 밧줄에 의지하여 오른다. 천태산을 오르면서 지인이 말하기를 천태산은 군에서 말하는 유격으로 밧줄을 몇 번 타고나니 정상이라고 하였다. 사실 그런 것 같다.  그 암릉을 여기에 담아본다.

우리 일행이 4명이어서 서로가 오르는 모습을 담아 준다. 그리고 기다려 준다. 2명이 동시에 같은 줄을 잡으면 안 된다는 철칙을 가지고 이동을 한다. 1명이 다 오르면 또 오른다. 그렇게 하면서 힘들게 오르고 쉬어가면서 담력 훈련도 하고 스트레칭 훈련도 한다. 우리는 4명인데 갑자기 5명이 되었다. 우리가 순서대로 오르고 있는데 젊은 여성이 한 명이 중간에 들어왔다. 우리 일행이 모두 오르 것이 미안해서 중간순서에 일행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보다 직별 줄을 잘 타고 오른다.

암릉 정상에 도착하였다. 이제 100-150m 정도만 더 오르면 천태산 정상이다. 그전에 암릉의 정상에 도착하였다. 오르기 전에 또 한 번의 밧줄구간이 있지만, 이를 회피하여 데크로 오를 수도 있다. 밧줄을 좋아하는 사람은 밧줄 구간으로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데크로 오른다. 그리고 여름날 햇빛을 받으면서 누워있는 정상에 서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바라보고 영국사, 그리고 주차장도 바라본다. 정상에 누워있는 누에모양의 바위도 보고 그리고 정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바위가 돌고래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바위를 보고 이웃한 야생화를 담는다. 그 야생화가 며느리밥풀이라고 한다. 식물학자가 2명이 같이 산행을 하고 있어서 그분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꽃잎 가운데에는 밥풀 같은 하얀 2개가 있는데 마치 입 안에 큰 밥풀 2개가 들어있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이 꽃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슬프다. 그리고 꽃말은 질투다.


그렇게 천태산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삼거리다. 천태상 정상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 정상에서 인증을 하고 돌아와서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우리는 느긋하게 산행을 한다. 산행이 이렇게 느긋하게 하는 것도 재미있다. 암릉을 밧줄을 잡고 오르니 정상이고 그리고 이제는 하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맛에 인수봉 릿지를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릿지는 하지 않는다.


천태산 정상 바로 앞에 천태산을 노래한 시가 있고 방명록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누가 쓸 수 있는 필기구가 없어 그냥 지나친다. 정상석으로 충남 금산군 산악회에서 설치하여 놓았다. 영동군에서는 이정표에 정상이라고 표시하여 놓았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군 경계에 있는 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양군의 산악회나 행정기관이 합동으로 정상석을 세워 놓으면 좋을 것 같다.

이제 하산을 한다. 하산을 하면서 멋진 경치도 보고 그리고 인증샷을 남긴다. 우리와 함께 릿지 비슷한 직벽 능선을 올라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분 사진을 남겨준다. 그곳에 있는 바위와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 본다.

이곳의 하산로의 암릉도 줄을 잡고 내려가는 곳이 있고 위험한 곳은 등산로를 폐쇄하였다고 안내되어 있다. 등산로가 4개 있는데 B등산로는 위험하여 폐쇄하였고 C 등산로는 위험하니 D등산로로 안내를 한다. 우리가 올라간 등산로가 A등산로이다. D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안부에 도착하고 이제는 영국사 방향으로 천천히 옆으로 걸어가는 등산로이다. 산책로다.(결론적으로 C코스가 B코스로, D코스가 C코스로 되어 영동군청에서 운영하는 안내지도는 등산로는 3개 코스만 있다)


영국사에 도착하였다. 불교신자인 일행은 대웅전과 극락전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본다. 영국사의 은행나무도 크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비교를 해보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영국사의 은행나무가 더 크고 우람한 것처럼 보였는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더 크다고 한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자료를 보면 이렇다.

 - 경기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 :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 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충북영동의 영국사 은행나무 :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약 31m, 가슴높이 둘레 약 11m 정도이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나는 두 나무를 금년도 같이 보았으니 그것을 사진으로 올려서 비교해 본다.

영국사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

천태산은 75m의 암벽을 오르는 코스가 있는데 이 지역의 토박이인 배상우 씨가 개인적인 열정으로 개척하였으며 밧줄도 사비를 들여 설치를 하고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분에게 감사를 한다.


영국사는 고려 공민왕과 홍건적의 난이 연결되어 있다고 관련자료 기록되어 있다.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멀리 경상도 안동까지 피난을 갈 때 이 지역을 지나갔으며 그때 당시 이사찰은  국청사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국태민안을 빌고자 하였으나 물을 넘지 못하여 칡덩굴로 다리를 만들어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빌어고 그것에 따라  왕이 나라안 백성들의 편안함을 빌었다 하여 편안할 영(寧) 자 나라 국(國) 자를 써서 (寧國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공민왕이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옥천을 거쳐 집으로 가야 한다. 영국사 주차장에서 나오는 길은 역시 좁다. 들어오는 차가 있다. 나가는 차가 2대라서 1대가 후진을 한다. 그리고 비켜선다. 편안하게 자동차를 몰아서 주차시키고 싶으면 천태산 주차장을 추천한다. 그리고 영국사 주차장은 버스 등 큰 차가 들어갈 수가 없고 주변에 음식점도 없다. 천태산 주차장 주변에는 음식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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