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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Nov 20. 2020

비가 예보된 용문산 급하다

한강기맥 : 비솔고개에서 용문산까지

한강기맥 비솔고개에서 용문산까지 이어 연결하여 걷는다.

신당고개에서 비솔고개까지 걷고 여유가 있으면 비솔고개로 걷기로 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비솔고개에서 신당고개까지 걷고 이번에는 비솔고개에서 용문산까지 걷기로 하였다. 용문산에서 탈출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오늘은 10km만 걷고 탈출에 5km를 사용한다.

오후에 뇌우 예보가 있는데 그전에 하산이 완료하기를 기도하면서 걷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이번에는 대중교통이 아닌 승용차를 이용하여 접근하고 탈출하기로 하여 이른 시간에 출발하였다.
서울에 4시 30분에 만나 여유롭게 도착하고 아침을 먹은 후 산행길에 올랐다.
용문사 주차장에 이른 아침이라 주차요원도 없어 주차요금도 내지 않고 주차시키고 성남에서 출발한 친구의 차에 탑승하고 비솔고개까지 이동하였다.


비솔고개로 이동하면서 친구가 지난밤에 잠을 설친이유를 설명하면서 코로나로 아들이 휴가가 일주일 연장되었다고 한다. 군에서 약간의 증상만 있으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코로나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휴가를 중단시키고 휴가 복귀 장병들이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방어하는 것이다.
본인이 쓴 글에 대한 구독자가 3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작가는 역시 작가다. 소소한 이야기와 등산 등이 주제인데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우리는 그전에 보았지만 다시 한번 구독해야겠다.


비솔고개에 도착하여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싸리봉으로 방향을 잡고 오른다. 반바지님이 만들어 놓은 표지가 이곳저곳에서 우리의 표지가 되고 있다.

고개에서 바로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어 힘든 계단과 오르막이다. 조금 가니 평탄하게 이어지는 임도에서 살짝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는데 아쉽다. 필요 없는 힘을 소진한 것 같다. 싸리봉을 오르면서 지난주 만용이 생각날 뿐이다. 이렇게 힘든 구간을 신당고개에서 비솔고개까지 온 후 체력이 바닥이 났을 것인데 이 구간을 걸어보겠다고 한 자체가 신비스럽다. 산을 오르거나 인생을 살거나 만용은 금물이다. 요즈음 산은 울창하다. 산림녹화의 결정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수림은 부족하지만 산을 들어가면 나올 수 있는 구간이 제한적이다. 예전에는 산에서 마을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수없이 많았으나 이제는 산에서 화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솔고개는 비슬고개라고도 어떤 곳에 표시가 되어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행정기관에서 비슬고개 비솔고개를 다 사용하고 있으니 행정기관의 표준인데 그것도 싶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명은 우리가 부르는 것이 지명으로 정착하기도 하지만 행정기관이 표준으로 부르는 것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밤에 내린 비로 공기는 깨끗하고 아침이라 서늘하다. 오후 3시쯤이면 탈출할 것이라, 생각하니 여유롭기만 하다. 싸리봉까지 가면서 친구는 도일봉을 가자고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싸리봉에서 결정하자고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도일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도일봉까지 왕복 2km나 되어서 포기하고 단월봉으로 이동을 한다. 싸리봉정상은 여기가 아니고 여기는 갈림길에 불과한데 여기서 인증샷을 남긴다. 정상 표지는 100m 남짓 걸어가니 있다. 주변은 안개로 가득 차서 경치는 없다. 다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좋을 뿐이다. 단월봉 문래봉을 거쳐 가섭봉까지 이동할 것이다.

기맥을 하면서 호기롭게 옆의 봉우리까지 갔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분들의 체력은 존경한다. 하지만, 나는 기맥을 하면서 빨리 걷기보다는 볼 것은 보면서 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빨리 가다가 쉬고 또 여유를 부리기보다는 천천히 걸으면서 꾸준히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싸리봉이 왜 싸리봉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싸리재를 간다. 주변은 볼 수 없다. 다만 산 능선이 좋을 뿐이다.


싸리재를 거쳐 단월봉을 오른다. 예전 중원산을 오를 때 이곳과 싸리봉도 지났는데도 기억이 없다. 이것이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단월봉에 이르러 한숨을 들이키는 데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와이드 렌즈로 이를 담을 수 있어서 담아 본다. 사실 카메라가 한계가 있어서 어려움이 있지만 요즈음은 휴대폰 카메라도 많은 기능을 갖고 있어 재미있는 사진을 많이 담을 수 있다.


단월봉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정상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이곳에 정상표시를 해놓았다. 단월봉과 단월면이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고 옆에 중원산도 있는데 이 봉우리와 면 이름을 연관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단월봉을 지나 문래봉이다. 요즈음은 천사봉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해발 1004m여서 천사봉인데 산을 오르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카카오톡도 온다. 친구 사무실의 동료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양성이면 우리도 위험하다고 한다. 코로나가 우리 곁에 온 것 같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친구는 격리 대상자가 아니라고 하니까 우리는 간접 접촉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날 친구에게 음성이라고 연락이 오니 안심이 된 것이 현실이다.


문래봉이 천사봉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흔적은 보이지 않고 힘겹게 오르는데 전화가 온다. 친구아내가 우리가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한 것이다. 오늘 뇌우 예보가 있었고 3시경인데 12시쯤 전화가 왔다. 아직 문래봉도 도착하지 못하였는데 하면서 하늘을 보니 잔뜩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한강 북쪽에 폭우가 오는데 비가 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전화다.


요즈음은 인터넷이 서울 인근 양평 인근에서 특히, 계곡이 아닌 산 위에서는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계곡 깊은 곳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멈추지만 산 위 능선에서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기상청의 구름 레이더 정보를 보니 한강북쪽 폭우 구름은 우리에게 영향이 없을 것 같은데 서울의 남쪽으로 흐르는 구름이 이동하고 있다. 언제쯤 올 것인지는 2시간에서 3시간 후면 우리가 비를 맞이할 것 같다.


내 마음은 서두르는데 친구는 만사태평이다. 본인은 우의도 있고 우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우의를 입고도 신발이 완전히 젖는 것이 싫다.

문래봉을 오르면서 아기 코끼리도 보고 친구가 초롱꽃을 먹는 것도 보았다. 문래봉 갈림길에서 또 고민을 하고 사람들이 속는다. 정상석은 없고 갈림길 이정표에서 돌아선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이면 안다. 천사봉은 조금 더 가야 한 다는 사실을  300m만가면 되는데 대부분 돌아서 내려간다.


우리는 정상석을 찾아 떠난다.

천사봉 정상석이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는 이것을 보았다. 정상석을 지나면서 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어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시가 되어 있다.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우리도 여기에 동참하여야 한다. 우리는 다시 회군하여서 가섭봉으로 가는 길로 간다.


정상을 갔다 오면서 갈림길에서 만난 산객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 보고 "알바하고 왔나"라고 물어본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봉 정상석 때문에 갔다 왔어요" 했지만  그들은 "그랬다고 그러세요" 한다. 그래서 "알바하고 왔다"라고 인정하고 가섭봉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30분 이상 걸으니 이제 한강 남쪽에 사는 친구 아내가 전화가 왔다.


한강 남쪽에 폭우가 내린다고 한다. 구름사진을 보니 우리에게로 올 것 같다. 2시간 이내에 우리에게 폭우가 올 것이다. 걸음을 재촉하지만 장비를 다 같고 있는 친구는 느긋하다. 1시간 전 비구름 레이더 사진을 보았을 때보다 비구름 속도가 빠르다. 우리가 아침에 예측을 하였을 때는 3시경에 비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2시가 넘으로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산에서 비를 맞으면 가장 싫은 것이 옷에 젖는 것도 있지만 안전 산행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뇌우는 빠르게 지나가는 현상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모두 동의될지 의문이다. 뇌우가 지나가기를 낮은 곳 등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섭봉을 오르면서 직접 정상에 접근할 수 있으나 약간 편한 길로 우회를 한다. 예전에 용문산에 왔을 때 한강기맥을 걷는 길을 보았을 때 능선을 타고 올라가서 옆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군부대 철조망 등이 있어 어려움이 있었던 기억이 있어 우회를 하기로 하였다. 5분의 여유와 힘겨움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편안한  등산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무조건 직진보다 한 번쯤 쉬어서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섭봉이 제일봉이다. 용문산은 용문사가 있는 산이다 보니 가섭봉이 제일봉이다. 사실 용문산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 전체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일봉은 가섭봉이다. 근처의 봉우리 이름이 장군봉, 백운봉, 문래봉 등으로 명명됨에도 불구하고 제일봉이 가섭봉이다. 그것은 산아래에 사찰이 용문사와 상원사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로 추측해본다.

이곳에 몇 번이고 와보았지만 새롭다. 잠시의 휴식을 뒤로하고 비구름띄를 보고 가장 근접한 거리로 하산을 재촉하지만 등산로는 무섭게 우리를 붙잡는다. 오를 때도 힘들지만 하산할 때도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용문산을 오르면 쉽게 내려갈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용문산 가섭봉에서 하산하는 등산로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돌산이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온다는데도 장비도 없는 것 같은데 오른다. 가섭봉 근처에 정자가 있으니 거기에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배 넘이고 개로 갔으면 보다 쉬웠을 수도 있다.
승용차를 애초에 그곳에 두었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그것이 아니어서 2시간 이상을 하산하면서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비는 가까이 왔는데 하산길은 어럽고 배는 고프다. 비가 오더라도 배가 고프면 하산할 수 없으니 시간을 짬 내어 허기를 해소하지만 마음은 바쁘다. 비구름 레이더를 보니 점점 다가온다. 가파른 구간을 벗어날 때까지 폭우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의를 뒤집어쓴다. 친구의 1회용 우의 찢어졌다. 우의 대신 우산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하산을 지속한다. 가파른 구간을 지나는 시점에 이제는 있으라고 하는 이슬비가 아닌 폭우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와서 뇌우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빗겨 서서 기다리자고 제안했지만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다. 우산을 든 친구와 나는 빗겨 서서 폭우를 피하기로 하고 바위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비가 약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이 난다. "비가 오는 들판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주었다." 우리도 그 꼴이다. 바위 그늘에 두 명이 앉아 비가 긋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차게 비는 솟아지는 데 앞 선간 친구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빗줄기가 약해지면 일어서기로 하고 기다릴 뿐이다.


10분의 여유가 폭우가 이제는 가랑비가 되고 있다. 가랑비에 젖는다고 하지만 앞서간 친구도 걱정이 되고 또 비가 오면 안 되기 때문에 하산을 시작한다. 폭우는 10분 정도 즐기차게 오다가 10분 정도 약해지다가 다시 강해지는 특성이 있는 만큼 그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용문사까지 내려가야 한다. 얼마 남지 하산길인 만큼 서두른다.  

친구들이 용문사에 도착하여 일산일사를 즐기는 사이 혼자서 오는 비를 피하면서 용문사 은행나무를 담아본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언제나 그 위치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로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되며,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 중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로서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堂上職牒) 벼슬이 내려졌다 하며, 마을에서는 굉장히 신령시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쳤기 때문에 중지하였다는 이야기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살라버렸으나 나무만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커다란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광복, 6·25전쟁, 4·19, 5·16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용문사에서 주차장까지는 2km가 넘는데 비 오지 않는 길은 좋은데 비 오는 길은 빗속에 도랑의 물이 깨끗하지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일주문에서 마지막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차량에 탑승한 후 비솔고개로 이동하여 차량을 회수하였다.

차량 두대를 이용하여 등산을 하는 경우 편의성은 극대가 되나 등산도 하고 운전도 하니 힘든 것은 사실이다.
운전하여 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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