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국내외 정치가 역주행하더니 계절도 덩달아 역주행이다. 4월 중순에 눈이라니. 118년 만에 가장 늦은 눈이 왔다. 왜 이리 시샘이 많은지 꽃샘추위가 아니라 꽃사추위다. 겨울이 가지 못하고 이처럼 샘이 많은 줄은. 샘이 많은 것으로 보면 정치인 누구누구를 닮았다.
아내와 보령댐을 지나 주산 벚꽃길에 벚꽃을 구경 가면서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오래 보게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네." 했는데 여지없이 그 기대를 저버린다. 날씨는 하루를 못 넘기고 표독스럽게 변했다. 벚꽃 심술을 넘어 벚꽃 깡패다. 벚꽃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2020년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 최근 5년간 심어진 가로수 153만 그루 중 18.6%가 벚나무류(왕벚나무, 벚나무)다. 정원, 조경용으로 심어 진 것까지 합하면 350여 ha다. 집 옆에도, 관공서 주변에도, 도로변에도 심지어 교회나 절 주변에도 온통 벚꽃이다.
4월 초 중순은 특별히 보러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벚꽃이다. '날 좀 보소'하고 손짓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벚나무는 죄가 없다. 누군가의 의사결정으로 집 근처에 길가에 그렇게 심어졌을 뿐이다.
벚꽃은 일본의 상징이다. 박상진 교수는《나무탐독》에서 보다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벚꽃은 1200년 전 일본 시가집에도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근세에 들어서는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벚꽃 계급장을 달고 100엔 벚꽃 동전을 품은 가미가제(자살 특공대) 대원들은 '사쿠라'라고 적은 전문을 보낸 뒤 적진에 뛰어들어 벚꽃처럼 산화했다. 벚꽃은 그런 꽃이다.
하지만 이전의 우리 선조들은 벚나무와 자작나무의 껍질(화피)의 얇은 속 껍질을 벗겨 활 몸의 탄력을 높이는 데 썼다.
벚나무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벚꽃은 일평균 온도에서 5.5도(기준온도)를 초과한 날의 온도가 모두 더해 106.2도에 이르면 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정교한 생체시계를 가진 식물도 올해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당해날 재간이 없다.
날씨도 할 말이 있단다. 북극 기온이 점차 올라 북극 찬 공기를 절리저기압이 한반도 상공 쪽에 자주 발달하면서 겨울 같은 봄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업보다. 벚나무는 계절에 맞춰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을 보러 왔다가 급변하는 날씨에 나무도 사람도 생채기가 날 지경이다.
사물도 흔하면 시큰둥하게 된다. 요즈음 벚꽃이 그렇다. 여기 보아도 저기 보아도 벚꽃천지인 세상. 다변화가 필요하다. 가로수로 더 이상 벚나무는 심지 말자. 화려한 봄맞이로 춘심을 유혹하고 온실가스 저감에는 기여하지만, 가로수로써의 역할은 크지 않다.
봄부터 가을까지 도로변의 우거진 벚나무는 걷는 나그네의 그늘막은 될지언정, 운전자에게는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제 벚꽃 엔딩이다. 벚나무 가로수 심기도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가로수도 다양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