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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성육남

이른 낙엽, 벚나무의 '조급증'일까

일상 속의 느낌

by 샤인
벚나무낙엽1.jpg


9월 2일. 여름이 가기 싫다도 떼를 쓰는데 가을은 급할 게 없다는 듯 종무소식이다. 언제부턴가 날씨가 한 번 왔다면 들어붓는 스콜성 기후로 변했다. 이렇게 비가 온 다음 날이면 홀로 계신 어머니 댁을 포터를 몰고 간다. 전날 온 비로 집 주변은 괜찮은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대천 시내에서 국도 21호를 통해 주포 사거리에서 7킬로미터쯤 오천항 쪽으로 가다 보면 오천 중앙로 길이 나온다. 보령화력으로 가는 이 길에는 20여 년 전쯤 확포장을 하면서 남쪽으로 벚나무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수령 20년쯤 된 셈이다.


무시로 다니는 길이라 별로 감흥이 없는 데, 바람이 불던 그날은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땡볕에 지쳐서인지 벌써 벚나무 잎들이 도로변 가장자리를 나뒹굴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까딱없는데 벚나무는 왜 이럴까?


개화 순서로 보면 벚꽃은 순위 안에 못 든다. 대개 봄꽃은 동백-목련-개나리-진달래-벚꽃-철쭉 순이다. 요즈음 와서는 이 순서와 간격은 좁혀지는 추세다. 이상 기후가 봄꽃의 생체시계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벚나무의 조로현상에 대해 국립 경상대학교 추갑철 교수는 "벚나무의 조기 낙엽현상은 강수일 증가에 따른 일조량 부족으로 광합성이 작용하지 원활하지 않아 가속화되고 있다"며 "즉 기후변화로 한반도가 고온 다습화되면서 조기 낙엽의 직접적인 원인인 '구멍병(곰팡이 때문에 잎에 구멍이 생기는 병)'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뉴시스 보도, 2023. 10. 17)"라고 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의심이 가는 대목도 있다. 제설용 염화칼슘 말이다.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았던 지난겨울이다. 도로변에는 그만큼 많은 제설제가 뿌려졌다. 도로변 벚나무에게도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도심 4차로변의 벚나무는 주행 차선과 떨어져 있어 대체로 영향을 덜 받는다). 염화칼슘은 토양의 알칼리화를 유발한다. 토양이 알칼리화되면 나무는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는 데 지장을 받게 된다. 즉 기력이 일찍 쇠할 수밖에 없다. 벚나무는 소나무나 은행나무에 비해 염화칼슘 저항성이 약하다.


벚나무는 조직이 조밀하고 잘 썩지 않아 목판으로 안성맞춤이다. 고려 시대 몽골 침입을 불력으로 막고자 국가 주도로 1236년부터 16년간 완성한 목판 불교 경전인 팔만대장경(8만 4천 자 법문 수록)도 최근 과학적인 조사 결과 60퍼센트 이상이 벚나무인 것으로 밝혀졌다.


벚나무에는 과학도 숨어 있다. 나무줄기 표면에 입술처럼 보이는 껍질눈(피목)이 있다. 이것은 벚나무가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유입하고 배출하며 숨쉬기 위한 장치다. 잎몸과 잎자루 사이에는 조그만 돌기도 있다. 밀선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개미를 유인해서 진딧물이나 애벌레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처럼 지혜로운 벚나무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가로수다. 태생과 상징을 떠나 우리와 자주 접하는 벚나무가 몸살을 하고 있다. 잠깐의 화사함으로 봄을 화려하게 증명해 준 벚나무가 가을에는 좀 더 느긋함으로 가을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


오늘도 그 길을 지나는데 생명을 다한 벚나무 잎들이 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뒹굴며 한마디 한다. "이제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살만 한데 벌써 부른다."며 "난 원래 조급증 환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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