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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화 Oct 10. 2024

열여덟 유럽일기 019

버들나무와 아빠의 상관관계

2016.09.25

Berlin, Deutschland


 험난한 6인실에서의 밤이 지났다. 잠에 들 때까지 짐만 놔두고 코빼기도 안 보이던 위층이 불안했는데 결국 고놈이 내 밤을 망쳤다. 새벽녘에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수선을 떠는 거야 그러려니 했다. 펍과 클럽의 도시에서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러나 고놈의 발이 내 베개를 밟는 순간 그건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자다가 깨서 술 취한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게 최악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내 침대를 밟는 게 최악이었다. 쏘리를 외치던 그 고얀 놈은 두어 번 더 헛발질을 하며 침대 프레임을 붙잡고 흐느적거렸다.

 술 취한 사람은 되게 보기 흉하구나.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남의 잠을 다 깨워놓고선 자기는 속 편히 코를 고는 게 얄미웠다.


 분명 잠을 잤는데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술주정뱅이의 코골이와 성실한 여행자들의 짐정리가 묘하게 맞물리면서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아직도 뻗어있는 내 위층을 한번 노려봐주고(심지어 신발도 한 짝 신고 있었다! 설마 신발로 내 베개를 밟았나?) 일어나 씻고 가방을 정리했다.


 열심히 가방을 싸다가 문쪽 침대에 앉아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던 남자는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는(그건 동정과 동지애였다.)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대충 고맙다고 답하고 자두를 건네주자 자기는 '건강한 것'이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와 착실히 움직였다. 어제의 쾌활한 언니대신 무뚝뚝해 보이는 아저씨가 카운터에 서있었다. 짐을 맡기고 호스텔을 나왔다. 날이 좋아 설렁설렁 걸으니 피곤했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목적지인 Topographie des Terrors(번역하면 '공포의 지형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된다.)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약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지만 날이 좋기도 했고 교통비가 아까운 것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10분 걷는 게 귀찮고 1시간을 넘어가면 큰 맘먹어야 하는(...) 운동이었는데 여행이라는 특수성과 가벼운 지갑이 합쳐지니 1시간쯤은 멀게 느껴지지도 않았다.(이후 내 여행에서 1시간까지는 그냥 걷는 거리가 되어버렸다.)

 

 베를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걸었다. 강변을 따라 군데군데 보이는 다리밑을 지나갈 때마다 벽에는 번잡한 그라피티가 보였다. 인적이 드문 탓에 그라피티 아래의 매트리스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노숙자가 머물고 있다기보다는 방치된 느낌이 강했기도 했고 짧은 굴다리만 지나면 평온한 산책길이 이어졌기에 걸을만했다. 


 그러다 굴다리를 지나기도 전에 발을 멈췄다. 짧은 어둠 뒤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대로 멈춘 채 사진을 찍었다.

 빨리 저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반, 막상 가면 지금 느끼는 서정적인 느낌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마음 반으로 머뭇거리는 발을 옮겼다.

그늘 너머로 들이치는 햇살과 버들나무 밑 벤치가 너무 보기 좋았다


 다가간 나무는 굉장히 크고 풍성했다. 정확한 나무의 이름은 모르지만 내 짧은 식견으로는 아마 버들나무의 일종인듯했다. 길게 내린 잎아래로 오래된 벤치가 놓여있었다. 빈말로도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봤다.


 살면서 풍경을 보며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 왕왕 있다. 눈으로 직접보든 아니면 다른 매체이든. 주로 좋은 풍광을 봤을 때 같이 왔으면 좋은, 또는 같이 가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니면 그전에 가보았던, 또는 가고 싶은 비슷한 장소를 비교하거나.

 그러나 아주 드물게 '사람' 그 자체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건 모두 다 아빠였다.


 처음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에서였다. 혼자 찾아간 사진전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서있는 코끼리 사진을 보게 되었다. 실루엣만 보이는 나무와 코끼리가 호수에 비쳐 데칼코마니를 만들고 있는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아빠가 떠올랐다. 그냥 그 풍경은 아빠였다. 이유를 설명하려 해 봐도 말이 안 나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사진의 미니 브로마이드를 사고 나왔었다.


 강가의 버들나무와 낡은 벤치. 그리고 따스한 햇살과 약간은 서늘한 강가의 바람. 그냥 또 아빠가 떠올랐다.

 그 풍경은 아빠였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나 이유 따위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괜히 못 찍는 사진도 두어 장 남기고 벤치 구석에 앉아 강가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꽉꽉 찬 유람선이 지나가고 땀이 식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갈길이 멀었기에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조금 내려와 티어가르텐으로 들어왔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공원이라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커다란 녹음을 가로질렀다. 작은 벽돌로 이루어진 산책길을 따라 걸어내려가다 보니 작은 열매 하나가 발에 차였다. 너무도 익숙한 모양새에 냉큼 주워 사진을 찍었다.

 한국이든 독일이든 가을은 도토리의 계절이다.


 동그랗고 실한 도토리를 보다 보니 엄마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열심히 도토리를 줍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주먹을 채우면 그게 뭐라고 괜스레 뿌듯해지곤 했다.

 한번 인식하니 길가에 떨어진 열매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만큼 딱 그만큼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공원에 있을 네발 달린 친구들에게 양보했다.


 공원을 나와 조금 걸으니 그 유명한 포츠다머 광장이 나왔다. 역사적 배경도 배경이지만 번화가의 중심지라 사람들이 가득했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에 그전부터 보고 싶었던 한국식 정자만 쓱 보고 이동했다.


 계속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광장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이 줄어들었다. 두어 블록 내려가니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 2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표인 테러의 포토그래피(공포의 지형학)는 옛 게슈타포 본부에 위치해 있었다. 외부에는 시간이 멈춘듯한 베를린 장벽이 보존되어 있고 그 밑으로 나치 집권기 때의 만행이 적혀있다. 내부 역시도 시간대별로 나치 정권하의 독일을 잘 정리해 둔 곳이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더 자세한 설명과 사진에 놀랐다. 대부분의 전시가 영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루한 영어 실력이지만 사진과 함께 읽어가니 이해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전에 보았던 추모비가 반성과 사죄의 내용이었다면 이곳은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을 시간에 따라 정리해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더 오래 전시관에 머물렀다. 계속해서 걷고 있는 다리가 아파올 때쯤 건물을 나섰다. 외부의 장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 못생긴 시멘트 덩어리가 뭐라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1차 세계대전부터 전간기, 2차 세계대전과 그 후 분단까지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직도 죽고 있었다. 비단 유럽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와서 한 블록 뒤에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도 구경했다. 관광객들로 가득 찬 거리가 아까 본 삭막한 사진과는 달랐다.


 다리가 아팠지만 숙소까지 다시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것보단 조금 둘러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조금 걷자 한번 와봤다고 눈에 익은 거리가 나왔다. 며칠 전 보았던 브란덴부르크문이다. 그냥 지나가기 아쉬우니 이번에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저번보다 더 잘 나온 사진이 뿌듯해 괜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1시간 동안 열심히 발을 놀리니 드디어 나의 홈스위트홈(임시)에 도착했다.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어제 묶었던 곳과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4인실이니 어제보다는 좀 더 쾌적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덤이었다.


 막상 들어간 방은 많이 좁았다. 겨우 2층침대 하나 빠진 건데 방 크기는 절반이 날아갔다. 좁은 내부에 실망도 잠시 그곳에는 내 침대가 없었다.


 이 호스텔은 체크인 시 침대를 지정해 주는 곳이었는데 마음대로 바꾸거나 하면 시트 교체비라는 이름으로 돈을 뜯어가는 곳이었다. 그 덕에 어제의 그 난리에도 나는 곱게 내 침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방배정이 잘못된 걸까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립셉션으로 향했다. 그다지 친절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던 아저씨는 내 얘기를 듣더니 앞장서서 방으로 올라갔다. 아마도 다른 여행객이 착각했을 거라며 이런 일을 겪게 해 미안하다는 말도 꺼내었다. 우락부락한 몸을 접으며 나에게 사과하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같은 침대의 2층 남자가 내가 써야 할 1층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내 발은 10분간 더 혹사당해야 했다.

 불청객 아닌 불청객도 정리하고 내 침대도 정리했다. 린렌을 깔고 베드버그를 확인했다. 푹신한 베개에 커버도 씌워주니 내 (임시) 거주지가 완성되었다.


 4인실 치고 좁은 방에 나를 제외한 3명의 사람이 다 남자인듯했다. 조금 껄끄러운 2층남자는 내일 새벽 체크 아웃이니 그 자리에 여자가 들어오기를 바랐다.


 엽서도 정리하고 일기도 쓸 겸 방을 나왔다. 좁은 침대에서 쭈그리고 쓰는 것도 낭만이라지만 지금의 나는 탁자가 필요했다. 

 어제 먹다 남은 피자와 자두를 다 해치우고 맥주도 한 잔 마셨다. 피자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당겨오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내일은 자전거를 빌려보기로 결정했다.

 오늘 하루 내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걸어 다닐 때 옆으로 지나가는 자전거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 모습을 보며 내일은 나도 쌩쌩 달리며 바람을 즐길거라 다짐했다.

 기동성을 확보했으니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도 괜찮을듯했다. 내일의 루트를 검색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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