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도 번역이 되나요?
2016.11.22 - 23
Hechingen, Deutschland
Ludwigsburg, Deutschland
작은 방을 채우던 룸메이트 둘이 떠나고 새로운 룸메 없는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근교 도시를 방문할 계획이었기에 티켓을 사고 지하철 환승을 거쳐 기차에 앉았다. 이제 앉아서 40분 동안 멍 때리면 되겠다 싶던 찰나 독일어 안내방송 하나가 객실을 울렸다. 보통 하차안내나 연착 안내기 때문에 무시하려던 찰나 싸한 느낌에 재빨리 행선지를 확인했다.
반짝이는 전광판에는 내가 타야 하는 목적지와 다른 지역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분명 어플도 확인하고 플랫폼 전광판도 확인했는데 어디서 틀린 것인지 식은땀이 쫙 나기 시작했다. 후다닥 내려 기차 외벽의 전광판을 보니 앞칸과 뒷칸의 목적지가 다르게 적혀있었다. 딱 한 칸 차이로 내가 가야 할 목적지 칸이 아닌 분리되는 기차칸이 첫 번째 칸에 탑승한 것이다. 후다닥 앞으로 달려가 차에 올라타고 전광판에 뜬 목적지를 한번 더 확인했다. 그전에 가끔가다 한 번씩 분리되는 기차를 탔었는데 다른 나라에 한 달 다녀왔다고 고새 독일기차에 대해 잊어버렸었나 보다.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진짜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호엔촐레른 성'이었다. 그동안 들린 국가나 재단소유의 다른 성들과는 달리 아직 개인(가문)의 소유인 성이었다. 물론 유럽에는 아직도 귀족 가문과 왕가가 건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독일에도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 역사가 역사이니 은연중에 사라졌다고 생각한듯했다. 그러나 유럽은 수많은 결혼과 계약으로 묶인 귀족들의 무대였고 그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파란 속에서도 가문의 이름과 재산을 유지한 귀족들은 꽤 많이 남아있었다. 호엔촐레른 가문도 내가 모를 뿐이지 뻗어 내려간다면 독일 프로이센제국의 왕실가문이었다.
방문을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볼 때 소유자 옆에 적혀있는 '왕자(Prince of-)'란 단어가 그리 어색하고 이상했다. 내게 왕자는 동화와 영화 창작물속 설정값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칭호로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의아스럽고 신기했으며 색달랐다. 또한 그런 유서 깊은 개인(가문)이 소유한 성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는 것도 신기했다.
귀족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뒤로하고 도착한 성의 첫 감상은 '요새'였다. 기차에서 내려걸어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온 성은 정말 산 위에 툭 놓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산길을 올라온 머스를 내리고도 조금 더 걸어 들어간 성은 성벽을 뺑뺑 돌아 지나야 입구가 보이는 구조였다. 분명 제대로 찾아왔는데 보이지 않는 입구에 당황도 잠시, 성벽과 표지판을 따라 걷자 성의 입구가 나왔다. 만약 내가 천 년 전에 찾아왔다면 높은 성벽과 단단한 철문에 절로 속이 답답해질 듯한 입구였다.
삭막한 외벽과 조용한 뜰을 지나 인포메이션이라 적인 문을 열자 독일치고 굉장히 친절한 직원분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분이 이곳이 사유지며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어 보였고 굉장히 뿌듯한 얼굴로 내게 가이드북을 건네주었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보이는 팸플릿형태가 아닌 말 그대로 작은 '책'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풀 컬러 코팅북을 받고 조금 당황한 나에게 가이드북은 무료이며 다시 나갈 때 반납하면 된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직원은 너무 좋은 퀄리티에 이게 무료인지 몇 번을 물어보는 나에게 짜증 없이 대여는 무료이며 사고 싶으면 나갈 때 5유로를 내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12시 반에 가이드 투어가 있으니 놓치지 말란 말을 덧붙여주었다.
나는 난데없는 영어 책자에 떠듬떠듬 글을 읽으며 건물을 돌아다니다 12시 반에 가이드 투어에 합류했다. 직원분은 친절했지만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셨는데 그건 바로 투어가 독일어로만 이루어진단 사실이었다.
독일 가족과 커플사이에 덜렁 떨어진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동공의 가이드와 눈이 마주쳤고 우린 둘 다 동시에 스스로의 영어실력에 자신이 없어 한단걸 깨달았다.
사실 투어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는 게 없다. 가이드는 독일어로 설명을 해주고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면 나는 따로 가이드북을 찾아보고 정보를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중간중간 영어설명이 있긴 했지만 너무 짧았기에 충분히 이해할만한 시간이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어자체는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혼자서라면 못했을 성의 문들을 열고 지나가며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가 싫어할 수가 없는 방식의 투여형태였다.
투어의 끝무렵에 성 안쪽탑의 계단을 올라 성곽을 올라가는 코스가 있었다. 계단이 좁고 가팔라 힘들었지만 그 작은 문을 열고 튀어나왔을 때 얼굴로 맞는 찬 바람과 성벽의 풍경은 인상 깊었다. 뒤따라오는 아이에게 삐걱이는 문을 잡아주며 소심하게 'Dear'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았다. 여기서 어르신들이 나에게 종종 사용해 주던 단어라 나도 한번 써보고 싶었다.
투어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성을 구경하다가 집 가는 기차를 위해 걸어서 하산을 결정했다. 분명 시간상 셔틀버스가 운행되어야 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도로옆을 걷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또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길을 따라 내려갈 때는 조금 무서웠지만 등산하고 하산하는 기분이 들었고 산을 빠져나와 도로를 걷자니 풀밭을 지나 산 위에 보이는 성이 볼만했다. 아스팔트길을 걷는데 마치 영화 속 배경지를 따라 걷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아 무서움보다는 풍경을 구경해서 좋은 마음이 더 컸다. 다행인 일이다. 그렇게 1시간 하고 조금 더 걸으니 마을이 나왔다. 작은 다리를 건너니 나오는 마을과 기차역이 꼭 동화 같았다.
연착된 기차덕에 중간에 들려볼까 생각한 마을 하나를 포기해야 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이미 오늘치 모험을 신나게 즐긴 덕분에 환승역에서부터 졸음과 추위가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험보다는 뜨끈한 샤워와 포근한 침대가 필요했다.
어제의 모험의 여파가 강했는지 결국 늦잠을 잤다. 도시이동을 제외한 대개의 경우 내 일정에서 늦잠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어제에 이은 독일 궁전투어를 위해 루트비히스부르크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늦잠으로 외출이 늦어지고 밀린 외출시간만큼 기차도 놓쳤다. 그렇게 영어 도슨트도 놓쳤다. 다음 도슨트는 거진 2시간 뒤에나 있었다. 잠깐 독일어 도슨트를 예약할까 생각했지만 영어도슨트와 시작시간이 거의 차이 나지 않고 직원분의 완곡한 만류로 영어 도슨트를 예약하고 2시간의 대기로 들어갔다.
내부는 도슨트와 함께하는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강제로 야외 대기가 확정되었다. 자칫하면 지루하고 고난의 시간이 될 수 있었겠지만 정원이 워낙 넓고 날씨 역시 나쁘지 않았기에 썩 나쁘지 않은 기다림이었다. 가을에는 축제를 할 만큼 거대한 정원부지를 돌아다니고 건물 외관을 구경하며 잘 안 찍던 셀카도 몇 장 남겨보았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와 몸짓이지만 혼자서 사진을 찍는 게 재밌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들어오는 사진요청에 응해 타인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물론 내 극악의 사진실력을 알기에 무조건 많이 우다다 찍고 핸드폰을 건네주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꽤 긴 시간의 기다림이었지만 지루하진 않은 시간이 흐르고 미팅포인트에서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었다. 열명이 조금 안 되는 인원으로 시작된 투어는 내가 봤던 그 어떤 투어보다 특별했다.
1시간의 투어는 즐거웠고 어제의 요새 같은 성에서와는 다른 화려한 멋이 보기 좋았다. 가이드는 친절하고 유쾌했으며 영어도 너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 투어가 특별했던 이유는 투어의 내용보다는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이날 가이드가 하나의 문장을 마치면 적어도 3개의 언어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어인지 포르투라어인지 모를 언어를 사용하는 커플들은 서로 이해한 게 맞는지 대화를 시작했고 아이가 있는 가족은 엄마가 총대를 메고 번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중년의 여성 두 분이었는데 한분은 청인이고 한분은 청각장애가 있으신 분이셨다.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바쁘게 시작된 수어는 실시간으로 가이드의 말을 전했고 중년의 여성분은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 가끔씩 일행을 통해 바쁜 손짓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도슨트는 영어로 이루어졌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모두가 가이드의 말에 경청했고 웃었으며 자신들의 보고 느낀 것을 자신들의 언어로 소란스럽게 감상을 나누었다. 문뜩 나도 이 감정을 누군가와 바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종종 동행들과 함께할 때 느꼈던 경험 이기는 했지만 더 크고 강한 감정을 더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과 말하고 싶어졌다. 여행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바란 것을 나를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과 함께 얘기하고 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면 더 깊고 긍정적인 기억을 남길 수 있을 거 같았다. 언젠간 꼭 그런 여행을 하고 싶어 졌다.
도슨트가 끝나고 여운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개정 전 모습만 보았던 크리스마스 마켓의 개장날이라 시작 이벤트 시간에 맞추어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개장 이벤트는 심심했고 딱히 볼 것도 없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시작된 지역 성가대의 공연은 멋졌다.
배가 고파서 마켓에서 내 사랑 커리부어스트를 하나 사 먹었다. 독일 와서 처음으로 커리부어스트를 실패했지만 소시지의 실패보다는 빵의 실패였다. 그나마 먹을만한 고기맛으로 빵을 다 해치우고 맛난 빵과 맥주가 그리워져 마트로 들어갔다.
주전부리까지 알차게 쇼핑하고 마트에서 계산을 하던 중에 16세부터 맥주 구입이 가능한 독일에서는 드물게 여권검사를 당했다. 딱딱한 표정의 캐셔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아이디를 요구할 때는 조금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신분증을 내도 못 사 먹지만 여기는 내 여권과 얼굴을 쓰윽 보더니 쿨하게 맥주캔을 건네주었다. 당당히 내 돈 주고 구입한 맥주를 소매에 넣고 마트를 나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유럽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당당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