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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Sep 07. 2018

다녀오겠습니다 [2018버닝맨편] #4-5 다섯째날

코리안 백수 청년의 무모한 버닝맨 탐방기

20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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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AM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파인애플 팬케익.

드디어 버닝맨의 마지막 아침이다. 간만에 머리도 감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래먼지에 뒤덮여서 머리카락이 굳은 탓에 샴푸를 들이붓다시피해서야 겨우 멀쩡한 머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 오른쪽 캠프에서는 핫도그를 나눠주고 왼쪽 캠프에서는 팬케익을 나눠줘서 오늘도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다. 거기다 뉴욕에서 사온 컵밥이랑 라면도 거의 다먹어간다. 가져온 건 가져온 것대로 다 먹고 주는 건 주는대로 다 먹으니 어째 여기오고 살이 더 찐 것 같다.



10:00AM
화장실에 붙어있던 종이.

문제는 먹은 만큼 싼다는 거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었던 그 화장실에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갔다. 무려 세번이나...버닝맨에서 유일하게 끔찍한 기억이다.



12:00AM
버닝맨을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사진 중 하나.
밤에는 클럽이었던 한 캠프. 낮에는 또 이렇게 평화롭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플레야의 아침이 느닷없이 평화롭다. 어젯밤 많은 사람들이 밤새워 놀다가 아침에 장렬하게 전사한듯.



02:00PM
센터캠프를 둘러싼 벽에 그려진 벽화 중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하나가 있었다.
미디어 캠프

혹시 모를 출판을 대비해서 판권에 대해 문의를 하러 미디어 캠프에 왔다. 담당자를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어가 너무 낯설어서 처음에는 벙 쪘다. 알고보니 중국 다큐멘터리 촬영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분. 촬영팀에서 버닝맨 촬영에 대해 축제 이틀 전에 공지를 해준 바람에 버닝맨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겨우 이틀 준비해서 왔다고 하신다. 얼굴만 봐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셔서 안타까웠다. 역시 버닝맨은 이틀 준비해서 올 곳이 아닌가... 간만에 모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생겨서 반가웠다. 담당자는 어디로 갔는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03:00PM
이곳에서 넉놓고 음악을 들었다. 최고의 밴드연주였다.

미디어 상담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가는 길, 귀에 익은 롤링스톤즈의 노래가 들려와서 어떤 캠프 앞에 자전거를 멈춰세웠다. 라이브 공연중이었는데 Coral Fang이 왔다고 해도 믿을 법한 보컬실력이었다. 할일도 딱히 없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한 시간 정도를 공연 들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주옥같은 명곡들만 골라서 열창하는데 4Non Blondes의 What's UP을 부를 때는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걷다말고 들어와서 함께 환호할 정도였다. 음악으로 하나되는 버닝맨의 모습이다.



06:00PM
우리 캠프 사람들. 다들 지쳐보인다.
언제봐도 눈부셨던 사막의 석양.

캠프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봐야해서 한명 한명 따로 인사도 전했는데 5일동안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처음에는 이름 외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얼굴만 봐도 기분을 알 것 같다.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최고의 캠프라고 얘기하던 우리 캠프. 좋은 캠프 만난 덕분에 힘든 것 없이 너무 편하게 지냈다. 슬슬 리노에서 사온 바카디 한병을 챙겨서 딥플레야로 나서야겠다. 드디어 길고 긴 여정의 끝이 보인다.



07:00PM
딥플레야에서도 핫도그를 구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Man-Burn 행사를 앞두어 그런가 마지막까지 열정이 대단하다.
...

명당자리를 잡기위해 일찍부터 딥플레야를 향했다. 가는 길에 핫도그도 얻어먹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갔는데도 아직 버닝맨조형물 근처에 사람이 별로 없다. 파이어 댄싱은 9시부터, Man-Burn행사는 10시부터라 지금부터 기다리면 허리는 아프겠지만 좋은 자리에서 볼려고 7시부터 앉아서 기다린다. 글쓰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느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른쪽에는 한 가족이 앉아있었는데 아들 Eric이 이번에 스탠퍼드대학교에 들어간다며 기념으로 함께 왔다고 한다. “대학에 가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어떤 시선을 갖고 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또 어떤 마음을 지닌 채 목표를 세워야 하고 어떤 태도로 배움에 임해야 하는지. 아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버닝맨은 실리콘벨리 부모들만의 특별한 자식 교습법일까. 잊지 못할 입학 선물이 되겠다.



10:00PM

파이어댄서 수백명이 투입된 대규모의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Man-Burn 행사가 시작된다. 나는 일찍부터 기다린 덕에 일반 참가자가 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행사를 볼 수 있었다. 한 주 동안의 사랑과 열정을 기념하는 걸까. 허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교차한다. 정월대보름날 보던 달집태우기랑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규모가 훨씬 컸다. 왼쪽에 앉아있던 Adam은 Man-Burn 행사가 버닝맨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이유가 우리가 즐기고 환호했던 7일간의 기술문명이 언젠가는 먼지가 되어 버릴 물질에 불과한 데 있다고 말했다. “세상를 지배하는 물질세계에 대한 자그마한 저항의 표식인 셈이죠.”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기존세계로 돌아가야하는 아쉬움일까, 대견한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일까. 안도감, 슬픔, 환희, 고마움, 치유 등등 여러가지 절정의 감정들이 교차한다. 사람들의 눈물은 어쩌면 이유없고 뜻하지 않은 본능적인 생리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1:30AM
거대한 신전과 조형물이 한줌의 재로 변하고 있다.

신전이 어느정도 타들어갈때즘 사람들이 다같이 신전으로 뛰어가서 가지고 온 물건들은 던진다. 진짜 달집태우기랑 똑같잖아? 하면서 나는 그냥 갖고있던 가방 통째로 던져버렸다. 어짜피 버릴꺼 그냥 지금 버리고 싶었다. 어느덧 벌써 열한시가 넘었다. 캠프로 돌아가려는데 파이어 댄서들이 마지막날을 기념해서 밤새도록 공연할 모양인가보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지만 내일 늦잠자면 벌어질 상황들이 감당이 안되서 서둘러 캠프로 돌아가서 잘준비를 마쳤다. 이제 이 텐트도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 보다는 안도감이 크다. 내일이면 드디어 이 모래지옥에서 탈출한다니! 말은 그렇게 해도 어느덧 맑은 공기보다는 모래먼지와 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잠을 청한다. 내일은 이 모든 기억들이 한편의 꿈으로 변해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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