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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Sep 10. 2018

다녀오겠습니다 [2018버닝맨편] #5-3 메인 인터뷰

코리안 백수 청년의 무모한 버닝맨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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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 Mumu

딱봐도 어려보이는 그녀의 나이는 18살. 내 또래조차 찾아보기 힘든 블랙락시티에서 내가 만난 최연소 버너의 이야기다. (어른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직접 결정하고 스스로 준비해서 참여한 버너 기준이다.)



어떻게?

그녀는 중국에서 온 배낭여행자다. 10개월째 세계여행 중이었는데 버닝맨을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간다며 생각만 해도 즐거워했다. 10개월 전 여행을 처음 시작한 그녀가 페루에 있을 때였다. 숙소에서 만난 미국친구에게 버닝맨 경험담을 들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자신감에 넘쳐서 말하는 거예요. 내가 백날 말해봤자 모른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아니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며 그 한마디에 넘어가서 제 여행의 최종 목적지를 버닝맨으로 정했죠.”

그러나 그녀는 나처럼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 못되었다. 입장티켓 한 장 달랑 구해놓고 그 이후로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원래 대충대충 사는 편이라서요. 아무런 계획도 없었죠. 일단 경험해보자, 그게 다였어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하루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캠핑관련 기부단체에 찾아가서 텐트와 슬리핑백을 받았고 다음날 리노로 갔어요. 리노에서는 히치하이킹을 시작한지 3시간 만에 저한테 딱 맞는 차를 얻어 탔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죠."

그 패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네 살이나 더 어린 여자앤데 나보다 한참 용감하다. 이럴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 건가. 그녀는 준비를 안 해왔기에 더더욱 이곳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고 말한다.

"부티크 캠프에서 모자도 받았고 옷도 받았어요. 음식을 주는 캠프가 많아서 매일매일 밥은 얻어먹고 있고, 여기서 만난 친구네 캠프에서 잠을 자요. 뭐 하나 가지고 온 것도 없는데 너무 잘 먹고 잘 살죠?"



무엇을?

어린 나이에 떠나온 여행이니만큼 또 사막이니만큼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

"나눔을 배웠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밖에 안 가지고 있던 물통을 주기도 했죠. 자기는 또 구하면 된다면서요. 또 첫날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처음 만나서 대화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아서 저한테 캠프를 같이 쓰자고 말했고 지금까지 같이 다니고 있죠. 너무 고마워요.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본 기억은 없는데."

그 말에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가 있었다. 조금 전 내 엽서를 부쳐주러 버닝맨 우체국에 간 랩터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는 것보다 베푸는 것에 더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실 버닝맨에서 대답하기 가장 힘든 류의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따위의 질문인데 그래도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는 봤다.

"저는 자전거도 없어서 매번 아트카를 얻어 타거든요. 그저께였나, 저녁에 딥플레야를 걸어다니다가 날이 깜깜해졌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빨리 돌아가고 싶은데 아트카라고는 보이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모르겠다 싶어서 포기하고 누웠는데 별이 쏟아지게 많이 보였어요."

"사실 여행하다보면 맨날 보는 게 별이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딱히 별을 많이 봐도 별로 감흥은 없었는데 어제는 그냥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지금 혼자 무슨 고생을 하고 있나, 가족들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그 깜깜한 허허벌판에서 엉엉 울고 있는데 하필 딱 제옆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제 앞에서 갑자기 멈추더니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안아주는데 그 포옹 한 번에 모든 서러움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그 친구가 자전거 뒤에 달린 마차에 절 태워줬는데 슬펐던 건 까맣게 잊고 같이 밤새도록 사막을 누비고 다녔죠."

나도 버닝맨에 있으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것보다 더 많은 포옹을 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포옹이 가지는 힘이 되게 크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용기가 되고, 때로는 위안이 되고. 때로는 아쉬움이 혹은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더 자주 포옹을 나누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팁?

"저는 준비한 게 없어서 팁도 사실 없어요. 샌프란시스코에 Last minute gear라는 곳에 가면 무료로 캠핑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저는 티켓값 말고는 버닝맨에 쓴 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영락없는 18세 소녀만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먹고 자는 거에만 300불은 쓴 것 같은데... 저런 미소를 가졌으니깐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사는가 보다 생각했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글을 본 저처럼 어린 사람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도 처음 왔을 때 다들 나이 많은 분들 뿐이라 걱정 많이 했는데 아무도 저를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또 지나치게 배려해주지도 않아요. 여기서 나이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자체를 봐주고 대우해주니까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한데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

등뒤의 티셔츠에 적힌 문구가 마치 그녀의 용감한 생각을 대신해서 전파하려는 것 같다.

Never Stop Dre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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