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하 Sep 10. 2018

다녀오겠습니다 [2018버닝맨편] #6 다시,버닝맨이란

코리안 백수 청년의 무모한 버닝맨 탐방기

비유의 대상을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간에 있다가 나온 기분이다. 이질적인 사막의 태양, 모래 위를 달리는 자전거와, 밤이면 완전히 다른- 화려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도시, 내가 그곳에 있었지만 여전히 현실감은 없다.

한주간 온몸을 뒤덮은 모래먼지에 몸서리쳤다. 버스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올 때 그 모래마저 친해진 느낌은 있었다만 역시 안도감이 압도적으로 컸다. 현실세계에 나왔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보통 사람인가.

-

-

-



다시, 버닝맨?

버닝맨에 가기 전 기대에 부푼 채 버닝맨의 가치관을 알리겠다며 ‘버닝맨이란?’ 하고 처음 글을 써내려갔는데, 거기에 더해서 지금부터는 내 경험 이후에 정의 내리는 버닝맨이다. 어떤 삶을 겪어왔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준비를 하고 왔는지에 따라 수십만 명의 버너들에게 '버닝맨'의 의미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미리 참고 바란다. 내가 내린 정의가 턱없이 추상적이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 한들 버닝맨에 대한 시선을 특정한 틀에 가두는 일은 없었으면.



자유

사막에는 편견, 사회적 제도 보이지 않는 제약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위도, 권력도, 윤리도 인종이나 성별, 나이, 심지어는 기존세계의 이름도 없다. 개인과 개인 사이를 막고 있는 모든 장벽 사라진다. r그렇게 8만명의 용감한 버너들은 내가 좋아하는 이라면 어떤 괴짜같은 일이 됐든 눈치보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나체로 돌아다니는 것도, 호랑이가 되거나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것도, 이곳에서는 모두 '당당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일축되기 때문. 넓은 의미에서 이는 감추지 않은 각자의 본모습 찾아 교감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때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는 것을 '이상한 ' 아닌 '새롭고 멋있는 '이라며 열광한다.  응원에 힘입어 표현은 더욱 격렬해진다. 일반적인 기준을 따르지 않을  그것을 배척하고 외면하는 기존 사회와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에 존재하는 어떤 상상이든 자유롭게 표현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하는 사막위의 낯설고 혁신적인 풍경. 마찬가지로 이곳의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상대의 표현방식에 대해 호기심으로 답한다. 자유롭게 만지고 질문하고 각자의 솔직한 의견을 나눈다. 그것이 사막 위의 기괴한 자기표현이 자유로운 예술세계로 변하는 과정이다. 틀을 벗어나서 인정하고 질문하는 과정은 창의력의 발판이 되기에, 사막에서의 일주일  사람들은 새로운 영감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 집에 돌아갈  있다.



교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중시되는 곳. 버닝맨은 사실상 사막위의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다. 기존 세계에서는 사실 한마디 말을 꺼낼 때도 신중을 가해야 한다. 직업, 성별, 나이 등 사회가 요구하는 신분과 지위에 부응하느라 입을 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잦기 때문. 그것이 세상이 부여하는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언어를 취사하는 방식이었다면,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난 채 의견을 나누는 버닝맨의 대화는 단순히 대화 그 이상의 에너지 교류인 셈이다.


틀을 벗어나 활기를 띤 언어는 진실한 소통의 교량이 되고,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 마주하는 개인과 개인 그 사이에서 대화가 오간다. 이 대화에서 상대와 나를 비교하는 기준은 서로의 생각뿐이다. 내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대단한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우리는 그동안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치중하느라 어떤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했던 것 아닐까. 다양한 사람들(8만명의 버너가 모두 다 다른 생각을 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양했다)과 자유롭게 대화하다보면 내가 가진 생각의 한계를 수도 없이 느끼곤 했다.



나눔

사막의 생명체들은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나눔을 통해서 도시의 근간이 유지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본인의 티켓을 자비로 사고 식사도 캠프도 직접 준비한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싶다는 그들의 순수한 나눔 메시지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나눔정신을 이어간다.


그렇다, 버닝맨의 경제는 자발적인 나눔을 통해서 성장한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음식이나 기념품을, 그게 없다면 음악이든 지식이든 재능이든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나누는 사람들. 무언가 하나라도 더 베풀 수 있다는 데서 가장 기쁨을 얻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남을 돕는 사람을 바보라며 손가락질하는 세상. 대가없는 도움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세상. 바깥을 둘러싼 현실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이곳의 나눔은 더 돋보인다.


조건이나 계산없이 나누고, 사랑하고, 공생의 본능을 실현하는 사람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가치에 용기있게 대항하는 사람들. 이곳에서는 오히려 돕지 않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손해가 된다. 마치 나눔은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고, 나눔을 실천하기가 이렇게 쉽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러니 나눔이 사랑을 낳고 사랑이 도시의 기저를 이루는 곳. 그것이 버닝맨의 세 번째 정의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던 사막에 창의와 도전정신, 연대와 사랑이 피어난다. 국적도 생김새도 직업도, 성격도 모두 다른 8만명이 불화 없이 일주일을 지낸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고민하고 소통하고, 표현하고, 응원하고. 끝내 환호한다. 이유가 뭐가 됐든, 어떤 상황이 닥쳐도 모두의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 웃음. 자유로운 자기표현과 소통, 나눔을 기반으로 도시는 화려하게 불타오른다.



그리하여 이곳은 꿈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람들의 축제다.

버닝맨의 참여는 내 일생의 꿈이었는데, 버닝맨을 다녀오니 더 많은 꿈이 생겨버렸다. 넓은 세상을 구경하며 이미 많은 숙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많은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다.

그래도 랩터씨의 말처럼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 다르겠지.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일주일이었다!


City of Creativity, Innovation, Self-expression, and Community. - 이곳은 창조와 혁신, 자기표현과 협동의 도시

어쨌거나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사람들은 그곳을 향할 것이다.

서로 다른 8만가지 이야기가 황폐한 사막을 아이디어의 숲으로 탈바꿈시키는 곳,

세상 밖으로 나온 무모한 아이디어가 또다른 사람들에게 더 크고 불가능한 꿈의 영감으로 번지는 곳,



-

-

-

그러니까 범인류적 희망과 혁명이 담긴 가능성의 도시,

그곳 버닝맨으로.

이전 16화 다녀오겠습니다 [2018버닝맨편] #5-3 메인 인터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