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 콩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다가 생각한다. 곰팡이 콩, 검은콩, 죽은 콩, 발효콩 등을 찾아서 없애면 커피 맛이 좋아진다. 그럼 인간들 사이에 있는 못된 놈들을 없애면? 커피콩은 결점에 대한 기준이 단순 명료하니 결점 콩만 제하면 커피는 맛있게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은 어떨까. 먹고 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복잡하고 기준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쁜 인간을 골라내기도 쉽지 않고 골라낸다 한들 그 상태가 유지되지도 않을 테니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 리라.
생두를 수망에 담아 센 불로 20분 볶으니 껍질이 벗겨지고 좋은 냄새가 나면서 보기 좋은 색으로 변한다. 부채로 빨리 식혀서 커피를 내리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맛이 난다. 라즈베리, 딸기 무스의 새콤한 신맛이 돈다. 침이 고이며 이른 봄꽃, 홍매화, 목련, 산수유 등이 떠오른다. 식어 가는 커피에서 맛있는 냄새가 웅장하게 핀다.
사람도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향기가 나면 좋겠다. 소박하고 부족해도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하면 좋겠다. 일상의 지루함을 특별한 긴장감으로 바꾸어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재주를 부릴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커피는 산들산들 부드러움으로 넘친다. 알싸한 쓴 맛과 블랙베리의 세련된 신 맛,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향기로 유혹한다. 주저함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도 괜찮다며 의기소침한 나를 다독거린다. 가는 여름, 오락가락하는 비, 변덕스러운 바람에도 언제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커피뿐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