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머무는 사랑은

코스타리카 카투아이 꼬라손 데 헤수스 세미 W

by 만델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 결국 또 내 가슴을 철렁이게 할 단 한 사람, 헤어진 대도 헤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떠나보낸 그 사람, 내 심장의 과녁을 정확히 맞히며 내 인생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사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만년을 함께했던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그 사람, 내 존재 깊은 곳을 떨게 했던 이 지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사람. 그때 내 처지가 어떨지, 혹은 그를 향한 자세가 어떨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한번 심어진 사랑의 구근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 조그만 싹을 내밀 것이다. 그런 구근의 싹을 틔우는 사람이, 먼 하늘 너머 있다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그를 곁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느껴졌다.


229쪽. 최, 일본 사람 준고를 사랑하는 스물아홉의 한국 여자. 민준, 남들이 하면 별로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를 자근자근 재미있게 하는 장점을 가진 남자. 그런 민준이 사랑하는 여자 홍이다. 민준은 무려 십오 년 동안이나 바라보기만 하면서 기다린다. 결혼을 약속하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랜만에 읽는 사랑 이야기라 쓱 읽힌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그냥 좀 기분 나쁘다. 내게 그리 말했던 남자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정말 사랑이 뭔지 모르는 홍이가 답답해서 그렇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 대꾸 없이 웃는 사람, 새치름히 무심히 어깨를 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속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홍이 안타깝다. 든든함, 같이 감, 그런 느낌을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젊은 사람이라 그런 모양이다. 매일매일 떠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 것, 평범한 아침이 더없이 평화롭게 보이는 것, 사랑이 머무는 것이다.

오늘의 커피는 베이비파우더의 부드러운 흰빛 같은 벚꽃들이 후루룩 떨어지는 날 이노카시라 공원을 달린 후 한적한 벤치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다. 딸기가 그렁그렁 얹힌 생크림 케이크와 같이 먹자. 따끈한 애플파이도 좋겠다. 실연의 커피라 불러도 좋다.

사랑은 계피처럼 쌉쌀하고 거품이 많은 카푸치노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가, 하는 궁금증이 인다. 성 감기처럼 찾아오는 사랑을 맞는다는 것은 가없는 불안감을 제대로 설명하는 일이다.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고. 숨김없이 솔직하게 행복한 척 말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무수한 투쟁의 과정이 사랑이다. 사랑은 실을 알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저녁에 닫혔던 마음이 아침에 다시 열리는 일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감추는 거 없어야 하고 숨기는 거 있으면 서로 힘들어질 뿐임을 아는 것도 사랑이다. 그걸 아는데 오래 걸리지만 빨리 깨달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사랑이다. 비겁한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은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불쾌한 진실이라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다고 여기며 알게 되어 받아들이면 그것 또한 사랑이다. 금까지 있었던 일 전부 사실대로 말할 수 있을 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일이 사랑이다. 운 채로 끝내지 말자. 싸운 기억만 가지고 헤어지지 말자. 랜 시간 곁을 지키는 사람, 그 사람의 사랑, 그로 인한 변화를 생각하자. 자책하고 후회할 걸 아 것, 가슴뼈가 마구 흔들리고 온종일 켜졌다 꺼졌다 하는 믿음과 배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 사랑 아니겠는가.


바르고, 사려 깊고, 배려가 많고, 신중한 남자 사람이랑 덜렁거리고, 감정적이고, 남 생각 못하고, 실수투성이 철부지 같은 여자 사람이 연애를 하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구나 싶다. 사랑 그 외로움에 대하여 말한다.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커피를 마시자.

세월이 흐르고 먼 훗날, 서로의 모습은 얼마나 변했을까. 잊히지도 않은 마음이라면 슬픔의 껍질만 남아 있을 것이다. 뜻하지 않게 왔다가 잊히면 그만일 것을 안다면 느닷없이 떠난 사랑이 되겠지. 어떤 사랑이었던 지금은 쓰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마음속에 간직해둔 쨍하고 울렸던 그 소리를 듣자. 잠시 혼자가 된 시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