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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r 18. 2024

그래도 사람 일을 기계가 아나요.

죽기로 결심한 AI에게 -8화-



나는 항상 그 순간이 싫었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죄를 짓는 느낌. 온전히 나 혼자 죄인이 되어야 하는 기분. 뒤를 돌아 걸어가면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5분만 지나면 애들이랑 재밌게 놀아요."


도대체 5분짜리 울음으로 몇 시간을 죄책감으로 지내는지. 진우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나 혼자 집에서 진우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갈수록 마음 한쪽에는 불안함이 커져만 갔다.


정우는 어머님한테만은 맡길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런 불효자는 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아버님도 안 계시는데 적적하지 않으시겠냐고. 그러니 조금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다니던 심리센터는 육아휴직이 끝나는 대로 퇴사를 했다. 그렇게 2년을 진우한테만 쏟았다. 그리고 겨우 얻은 일자리였다. 계약직이라도 이 끈을 놓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업계 분위기는 그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들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언제나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일에도 예외는 없었다. 우울증이나 자살 징후는 오히려 그들이 더 빠르게 알아챘다. 사람들은 언제나 여기저기에 자신의 고통을 내비치고 싶어 했지만 정작 사람들 앞에서는 그걸 꺼렸다. 나는 내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었지만, 인공지능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징후를 미리 찾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초기 증상은 채팅만으로 해결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다니는 센터도 이미 인공지능 상담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결국, 나도 내담자를 직접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라오는 글에서 징후를 찾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 물론 인공지능보다는 한발 늦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점점 줄어들 것만 같았다.


그날도 나는 어린이집에 전화해 차가 막혀 늦게 가는 것을 사과했다. 이내 진우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정우와 함께 밥을 먹었다. 방으로 들어와 다시 내담자를 찾았다.


'그래도 얼굴을 마주하는 게 심리적인 유대감을 쌓기에는 좋죠.'


'그래도 사람 일을 기계가 아나요.'


'지금 당장 상담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세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이 문장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쓰다 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맥주 한 캔에 그렇게 깊이 잠이 들 줄도 몰랐다. 진우는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고, 정우는 언제나처럼 주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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