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결심한 AI에게 -9화-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에 잠이 깼을 때는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거실에는 신혼 때 장만한 흰색 서랍장이 무너져 있었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직접 조립해야 했지만 만드는 재미가 있는 제품이었다. 정우랑 앉아 좁은 거실에 부품을 늘어놓고 하루를 온전히 고심한 끝에 겨우 만든 서랍장이었다. 처음에 바닥을 잘못 끼워서 서랍을 열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하나씩 행복을 만들어 가는 거라고. 이런 게 하나둘 모여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그런데 그게 무너져 내렸다. 보는 순간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아래 진우가 있었다.
그동안 내담자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한 건 완전히 내 착각이었다. 이런 건 누가 이해할 수도, 해결한 수도 없었다. 가구회사에서는 직원을 통해 인쇄된 사과문과 보험금을 보내왔다. 기자 몇이 와서 사건의 경위와 심경을 물었다. 뉴스를 보니 이번이 8번째 사고라고 했다. 가구 회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그래도 아이가 서랍 위에 올라가거나 잡아당겨 넘어졌다면 백퍼센트 회사 과실은 아니라는 태도였다. 해당 제품을 전면 리콜하고, 리콜을 원치 않는 고객에게는 고정용 키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공들여 쌓아도 어떤 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거였다.
상담 센터도 더는 다닐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정작 나에게는 무용했다. 집 안 곳곳에는 진우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진우가 입던 옷. 진우가 가지고 놀던 기차. 진우랑 함께 누웠던 침대. 진우가 누워있던 바닥. 진우가 서 있던 벽. 그런 건 치워도 끝이 없었다. 한동안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진우는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튀어나왔다. 집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서도, TV 속에서 마냥 행복해 보이는 가족한테서도, 라디오에서 들리는 가구 광고에서도 진우가 등장했다.
결국 집을 줄여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몇 년이 지나자 진우가 예고 없이 나타나는 일도 줄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 뛰어노는 시간대만 피하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원할 때만 진우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받았던 보험금과 적금을 깨니 작은 상담소를 차릴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상담을 받는 사람은 AI 상담 프로그램이 완벽하지 않다고 믿는 고지식한 사람들 정도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살을 결심한 로봇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