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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r 24. 2024

나는 그 뒤로 J를 본 적이 없다.

죽기로 결심한 AI에게 -10화-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J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J는 여전히 결심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게 J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나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사실 수이가 다칠까 봐 걱정이었다는 말은 핑계였을지도 몰라요."


J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 하루는 수이가 부엌 앞에 설치해 둔 유아용 안전 가드를 넘어서 저에게 걸어왔어요. 분명히 전날에만 해도 넘지 못했는데 말이죠. 물론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이곳으로 오면 아이에게 위험하니까요. 식탁 위에는 도마도 칼도 가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뭔가 서운한 거 있죠. 수이는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겠구나.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커가겠구나. 그럼 언젠가는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수이는 점점 커가는 데 저는 점점 작아졌어요. 수이만 보고 살았는데 곧 수이가 저를 필요 없다고 말할 것만 같았어요. 조는 그걸 견딜 자신이 없어요."


생각해 보니 나는 J의 표정을 알 필요가 없었다. J는 슬프면 슬프다고 말했고, 기쁘면 기쁘다고 말했다. J는 애초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J, 아이가 크는 걸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에요."


나는 생각 끝에 말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었다. 진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큰 고통이었다. 내가 J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거였다.


"선생님, 하지만 수이에게는 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저는 수이를 완벽하게 키울 수도 없고,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행복해할 수도 없어요. 지금 수이에겐 진짜 엄마, 아빠나 혹은 신형 AI 로봇이 필요해요. 게다가 수이가 다 커버리면 저는 어차피 존재할 이유조차 없는걸요. 그때가 되면 메모리가 지워진 채 중고로 팔려가거나 회사로 회수되어 폐기될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었어요. 조금 빨리 일어난 것뿐이에요."


"J, 아이는 언젠가는 크기 마련이에요. 언젠가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아이에게서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J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를 통해서 만들어져요. 밥 먹는 습관, 슬플 때 짓는 표정, 심지어는 과자 취향 까지요. 그리고 그건 사라지지 않아요. 수이가 살아 있는 한, 그 흔적은 수이에게 영원히 남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건 명백히 J의 것이죠. 중요한 건 둘 다 살아있는 거예요."


J는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이내 J는 말없이 일어나 나에게 인사를 했다. J의 눈에 어떤 표정이 스치는 듯했다. 나는 그 뒤로 J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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