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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킴 May 12. 2024

1986년 12월 16일의 아빠는.

나의 1화

첫 번째 편지를 다 옮겨 적었다. 물론 이 편지가 정말로 첫 번째 편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뭉텅이로 쌓여있는 편지들 중에 하나를 꺼냈을 뿐이니까.


운 좋게도 이 편지 말미에는 날짜가 쓰여 있다. 1986년 12월 16일. 1986년의 아빠는 당시 27살이었고, 27살의 나는 취업 준비를 한다며 학교 도서관과 집 앞 카페를 전전하던 때였다. 물론 나도 연애 중이었지만, 아빠의 고민은 나보다 적어도 5년은 빨랐던 게 분명하다. 엄마를 보호하는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로맨틱한 말과 함께 술과 담배를 줄이겠다던 아빠는 사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애주가에 애연가이셨다. 초등학생 때는 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에 형과 함께 학을 접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가 빌었던 소원은 아빠가 담배를 끊는 것이었고, 사실 그건 엄마가 정해준 소원이었다.


종이학을 보시고도 그냥 웃어넘기시던 아빠는 결국 결국 병원에서 심각하게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담배를 끊으셨다. 별로 힘들어하는 내색도 없이, 그 흔한 금단 증상 하나 없이 칼로 무 자르듯 뚝 끊어내셨다. 그 모습을 보니 학 천 마리를 접던 시간이 조금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와보니 술, 담배를 줄이겠다는 말은 일단은 엄마를 꼬시려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물론 환갑이 넘은 현재의 아빠는 자상하고 다정하며 사려 깊지만,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아빠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다른 가정처럼 우리 집안에도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나쁜 뜻은 아니다. 외벌이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래도 무언가 잘못한 게 있으면 여지없이 회초리를 드시고, 엉덩이가 부르트면 굳이 멘소래담을 발라주던 아빠였다. 사실 빨갛게 부은 엉덩이에 발라주던 멘소래담은 마치 2차 체벌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 시절의 아빠가 그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에 저런 달콤한 말들을 적었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 시절의 아빠가 로맨틱했던 것인지 현재의 우리가 낭만을 잊고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이스크림 사주는 건 좋은데 살찐다. 하지만 살쪄도 사랑스러우니 사주어야겠다. 많이. 그대를 전국적으로 소문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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